▲지난 5월 6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오른쪽 세 번째)을 만난 생전의 김대중 전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측 제공
김 대통령의 생애 마지막 연설문 제목은 '9.19로 돌아가자'였습니다. 유럽연합상공회의소의 초청으로 예정(7월 14일)됐던 이 연설은 7월 13일 입원 때문에 유고 연설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 대통령은 이렇게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문제는 6.15공동선언으로, 북한핵문제는 9.19공동성명으로 돌아가 해결할 것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가을쯤에는 북미대화가 시작되고 동북아 평화체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예견하셨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 소식을 듣고, 인공호흡기 때문에 말씀은 못하셨지만 관련 기사를 계속 읽어 달라고 손짓까지 하셨습니다.
12월 8일 보즈워스 특별대표의 방북으로 북미대화가 시작됐습니다. 일본 하토야마 민주당 정부와 북한의 대화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입니다. 6자회담도 곧 열릴 것입니다. 김 대통령의 예측대로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제 남북대화를 더 이상 지체시킬 시간이 없습니다. 한국 정부는 주저하거나 머뭇거려서는 안 됩니다.
이명박 정부는 김 대통령의 권고대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이행을 약속하고, 대북 인도적 지원, 금강산관광, 개성관광의 재개를 선언해야 합니다. 6자회담 문제에 대해서도 과거 2005년 9.19성명 합의와 6자회담에서 했던 것처럼 북핵문제의 당사자로서 우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합니다. 북·미·중·일은 대화를 하는데 남북 간에만 냉랭한 관계가 계속된다면 한국 정부는 6자회담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 뻔합니다.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6자회담에서 방관자가 되는 것도, '왕따'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둘째, 민주당과 야당, 시민세력은 단결하고 연합하라김대중 대통령은 세브란스 중환자실에 누워계시면서도 민주당과 그 주변세력들은 하나로 단결하고, 야당들과 시민단체는 연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원하시기 전에도 '단결'과 '연합'을 주문 외우듯 하셨습니다. 한때 병석에서 하신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말씀이 정치권의 논란이 됐습니다만, 그것은 김 대통령으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었습니다.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입니다. 새삼스러운 말씀도 아닙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에게 '50년 정통야당의 계승자'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입니다. 비서관들이 병원에서 함께 들었고, 입원하시기 전에도 항상 강조하셨던 말씀입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은 소수 의석으로 힘든 투쟁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정책면에서나, 인물면에서나 민주당은 취약합니다. 주변세력들도 당 바깥에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민주당이 단결하고 분발해야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민주당은 야당 및 시민세력들과 함께 '연합의 정치'를 보여줘야 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오랜 정치생활에서 수차례 연합을 추구했습니다. 이를 통해 야당 세력을 통합하고 재야세력과 젊은 신인을 정치에 충원하며 힘을 키웠습니다. 여당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지형, 즉 지지기반의 열세, 재정기반의 취약, 적대적인 언론환경을 통합과 연합을 통해 극복했습니다. 1997년 정권교체도 이른바 'DJP 연합'을 통해 이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합'의 방도도 말씀해주셨습니다. 연합을 위해서는 타협과 협상이 필요합니다. 김 대통령은 작년 병원에 입원하시기 직전 "자기를 버리면서 큰 틀로 연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가 크니까 7을 차지하고 나머지 3을 (연대에 참여하는 세력들이) 나눠 가지라는 식으로 해선 곤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력하고 있는 타 정파에) 30∼40석을 양보해서 우리가 60석을 얻어 모두 100석을 얻을 것인지, 따로따로 나가서 40석만 얻을 것인지 그것은 분명하다. 빈손으로 말 것인지, 아니면 전체 10개 중 5개라도 얻어서 2∼3개씩이라도 나눠 갖는 것이 나은지 그것은 분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국민들은 절실히 바라고 있습니다. 민주당과 주변의 정파들, 야당과 시민세력이 하나로 단결하고 연합해 거대 여당과 멋있는 경쟁을 해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가올 정치일정을 생각할 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기득권을 지키면서 현실에 안주할 때에는 절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리더십은 단결과 연합을 통해, 내부의 경쟁을 통해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줄 때 국민이 키워주는 것입니다.
셋째, 이명박 정부는 불행한 길을 걷지 말라 생애 마지막 순간에 김 대통령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이명박 정부였습니다. 2007년 12월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김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기대를 품으셨습니다. 이 대통령이 기업을 한 분이고, 실용적 생각을 가진 분이기 때문에 나랏일을 잘 해나갈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 대통령을 찾아와 남북관계에서 햇볕정책이 옳은 방향이라고 몇 차례 말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