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학교 교사로 남은 이유, "교사는 죄 짓기 쉬우니..."

진학 상담 교사의 고뇌, 교원대냐 지방사범대냐?

등록 2009.12.13 14:40수정 2009.12.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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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도청소재지 위성도시라고 할 만한 지방 소도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고3 담임을 맡고 있습니다. 이 학교는 흔히들 '인서울'한다고 하는 서울 소재 대학에 몇 명 합격시키면 플래카드도 거는, 그런 곳입니다. 

 

최근 제가 담임은 아니지만 가르친 학생이 한국교원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또 지방 국립대 사범대에도 합격했습니다. 이 학생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 반드시 국립대로 가야 합니다. 둘 다 되어서 기쁘긴 하지만 이제 하루 뒤면 등록금 내는 날인데도 선뜻 어느 곳을 가야 할 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지방국립대를 다니면 자기 수준에도 맞을 것 같고, 또 집안 일도 도와줄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은 데 다른 선생님들과 어머니는 교원대학교를 가라고 해서 결정하기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 학생이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제가 한 말에서 자기 결정에 대한 어떤 확신을 얻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고 3이었을 때, 저는 여러가지로 사회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공주 사범대에 다니며 집안 기둥 노릇을 하던 형님이 의문사 해 사회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깊었습니다. 때문에 저는 가난하고 힘 없는 사람은 당하고 살아야 하는구나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어렵게 살면서도 자식들 대학 보내보겠다고 그릇을 머리에 이고 다니시며 시골로 행상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고1때 위암으로 돌아가실 때 더 이를 악물었습니다. 꼭 공부 열심히 해서 고생하시는 아버지 만이라도 편하게 모시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죽는 일과 계속 사회 불평등이 일어나는 일을 해결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했고, 고3 마지막에 원불교 교무가 되기 위해 출가했습니다. 당시 저는 수학능력 시험 첫 세대로 공부한 것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둬, 요즘말로 '인서울' 할 수 있는 점수를 얻었습니다. 고민과 갈등이 많았지만 3일 고민한 끝에 출가했습니다. 많은 반대에 부딪혔지만 진짜 그 일을 해결하는 것이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했습니다.

 

물론 그 뒤에 다시 환속하여 지방 국립대 사범대에 입학했습니다. 이 때에도 성적이 좋았습니다. 다들 '인서울' 하라고 했지만 저는 지방 국립대 하나만 써서 이곳에서 공부하고 이곳에서 임용고사도 보고 지금은 이곳에서 교사로 7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방에서 사는 것이 좋았습니다. 원불교에 출가했던 사람으로 자기 출세보다는 공익을 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면 서울에서 흔히 말하는 '스펙'을 관리하면서 출세하는 길이 아니라, 공립학교 교사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욕심을 버리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원불교에서 모셨던 스승님께서는(지금 제 이름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임용고사에 합격하였을 때 "시골 조그만 학교에서 가르쳐라. 교사는 할수록 죄를 짓기 쉬우니까 되도록 적은 수의 학생을 가르쳐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사가 되어서도 시골에서만 가르치면서 되도록 죄 짓지 않으려고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 학생은 저에게서 지방 국립대에 가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자신도 저처럼 지방에서 공부해도 교사가 될 수 있다고 말해달라고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원대 가는 것이 임용고사도 그렇고 교사가 되어서도 학벌이 되고, 또 등록금도 싸잖아. 물론 나는 니가 지방국립대를 가는 것을 찬성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교원대가 낫지"라고.

 

최근 강준만 교수의 <지방은 식민지다>와 <입시전쟁 잔혹사>라는  책 두 권을 읽었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저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지방에 인재들이 남아서 그 곳 인재들을 양성하고 기르는 것 역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벽은 공고하고, 그 벽을 깨는 일에 내 한 몸 바치는 것은 괜찮을 지 모르지만, 자라나는 학생에게 그 어려운 길을 가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무한 경쟁의 입시체제 속에서 자기 가림을 하기에도 바쁜 학생들에게 대의를 위해 지방에 남아보라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저의 행동을 통해 학생들이 보고 배우기를 기대해 봅니다. 사회를 위해 또 인간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경제적인 동물이 되기를 약간은 포기하고 조금은 이상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위해 투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자신의 손해를 조금은 감수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9.12.13 14:40ⓒ 2009 OhmyNews
#대입 #학벌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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