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끓인 미역국, 쇠고기를 넣고 조선간장으로 간을 맞춘 미역국은 개운한 맛과 고소한 맛의 조화가 일품이지요.
조종안
화장실에 들러 손을 씻고 주방에 들어가 무엇을 해먹을지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지만,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보다 잘 어울리는 반찬이 없을 것 같았다. 해서 미역은 준비해둔 게 있으니까 쇠고기하고 양념만 있으면 되겠기에 정육점으로 달려갔다.
정육점에서 쇠고기 한 근하고 파 한 단을 사 들고 오는데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고민 시작 한 달여 만에 '쇠고기 한 근'을 생일선물로 결정한 것이다. 아내에게 "올해 자기 생일선물은 '쇠고기 한 근'이야!"라고 해도 서운해 하거나 투정을 부릴 것 같지 않아서였다.
매월 아내에게 생활비로 25만 원씩 받는데, 각종 찬거리와 교통카드 입력, 소규모 경·조사비에 어쩌다 군것질도 하고 자장면도 사먹으면서 반가운 지인을 만나면 소주라도 한 잔씩 하기 때문에 여유가 없다. 해서 계획에 없는 지출은 1만 원도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다. 그래서 마음이 담긴 쇠고기 한 근도 적잖은 선물이 될 거로 생각하고 집에 들어서기 무섭게 아내를 불렀다.
"어이, 오늘이 자기 생일이야 축하해, 그리고 아침에는 미역국이나 끓여 먹자고, 미역은 집에 있으니까 자기에게 생일선물 하는 셈치고 쇠고기 한 근 사왔거든. 대신 내 솜씨가 부족하니까 국은 자기가 끓여야 되겠는데···." 잠에서 막 깨어 눈을 부스스 뜬 아내는 "축하는 무슨 축하요 쑥스럽게, 그리고 무슨 미역국을 끓인다고 쇠고기를 사와요. 하긴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 끓여 먹는 것도 괜찮지···"라며 주방으로 가더니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나는 1차 부도위기를 넘긴 가난한 회사 사장님 심정으로 서재에서 자료를 정리했다.
조금 있으니까 "안나 아빠, 식사하세요!"라는 소리가 들려왔는데, 고마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아 "아내 생일선물로 쇠고기 한 근도 괜찮네!" 소리가 절로 나왔다. 한편, 아내가 부도위기를 막아준 거래처 여사장님처럼 고맙게 느껴져 언젠가는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내와 마주앉아 고소하면서 담백한 미역국을 먹으면서도 "하따! 쇠고기가 생각보다 비싸데, 추석 때도 한 근에 1만 5천 원이었는데 오늘은 1만 7천 원이야, 1만 7천 원···"이라며 오른 쇠고기 값을 되뇌었다. 선물이 비싼 거라고 하면 미안함이 덜해질 것 같아서였다.
형님의 저녁 초대밥을 먹는 중에도 아내 전화벨이 자주 울렸는데 생일을 축하한다는 전화인 모양이었다. 조금 있으니까 집 전화기 벨이 울리기에 받았더니 형님이었다. 형님은 아내 생일이 맞는지, 집에 있는지 등을 확인하더니 저녁이나 함께 하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