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 당시에는 대부분 최상위 1-2등급에 속하던 외고학생들 중 4명 중 1명은 수능에서 4등급 이하를 받았다. 외고 효과가 학교 효과가 아니라 학생 선점에 의한 선발 효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행수(교과부의 수능 결과 발표 편집)
'외고 폐지론' 또는 '외고 개편론'의 핵심은 학생선발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성적 우수 학생 선점이다. 이를 통하여 중학교 성적 우수 학생들을 싹쓸이하여 이른 바 SKY 입학뿐 아니라 사법고시 최다 합격, 외무고시 최다 합격, 그리고 판사, 검사 수 최대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의사 고시 최대 합격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외국어고 입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거의 상위 1등급이며, 일부 2, 3등급이 존재한다. 자립형사립고가 없었던 서울의 경우에는 과학고와 더불어 상위 1~2등급을 거의 싹쓸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입학생부터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SKY 입학, 사법고시 합격자 수로 직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일 교과부가 발표한 수능성적 분석 결과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수능 성적, 특히 수능성적 상위권을 결정하는 요인으론 학교 유형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 지역 유형이 가장 큰 변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위권의 경우 평준화, 비평준화 여부와 별로 상관없고 일반고냐 특목고냐도 수능 성적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결과를 보면 외고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교과부가 발표한 2008년과 2009년 수능등급 현황에 따르면, 외고 졸업생 중에서 (전체의 상위 11% 이내에 속하는) 1~2등급 비율은 언어 50%, 수리 54%, 외국어 64%로 전체 평균이 56%였다. 1~3등급(전체의 상위 23% 이내에 속함)에 속하는 비율은 언어 70%, 수리 64%, 외국어 82%으로 전체 평균이 76%였다. 이 수치만 봐도 결코 평균보다 높다고 자랑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4등급 이하 즉, 상위 23% 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언어 30%, 수리 36%, 외국어 15%로 전체 평균이 25%나 된다는 의미다. 입학할 때는 대부분 최상위 1~2 등급에 속하던 학생들이었던 '외고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엔 4명 중 1명이 4등급 이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내신 성적이 아니라 수능 성적을 이렇게 받고 있었다.
즉, 외고 학생들은 학생들이 외고에 입학해서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공부 잘 하던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명문대에 많이 가고, 사법고시에도 많이 합격하고 있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나아가, 원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이 오히려 외고에 입학해서 성적이 하락한 경우도 상당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외고에 여전히 주어진 '우수학생 선점'여기서 의미있게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선발 효과, 즉 학생 선점 효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고는 필기시험, 영어 듣기시험, 토익 토플 등 외국어 시험, 면접 구술 등을 통하여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쏙쏙 뽑아 갔다. 이를 위해서 당연히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많아 사교육의 진원지로 비판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외고에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영어듣기를 없애고, 필기 시험을 없애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등의 자구책을 내놓았다. 이번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에서는 여기에 '자기주도학습 전형'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 내용은 입학사정관 제도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교과부와 청와대는 이 입학사정관제가 우리 교육의 구세주가 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결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아직 대학에서도 입증된 바가 없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고등학교까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교과부나 청와대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왜 이 입학사정관제도를 실시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유일하게 미국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외고에서 학생을 듣기평가를 통하여 뽑든, 필기시험으로 뽑든, 면접 구술로 뽑든, 아니면 내신으로 뽑든, 아니면 입학 사정관제로 뽑든 학생 선점 특권을 개혁하지 않으면 외고 개편의 의미가 사라진다. 학생 선점, 또는 사교육 효과는 소위 말하는 풍선 효과다. 한쪽을 누르면 누른 만큼 다른 쪽이 튀어 나온다는 뜻이다.
듣기평가로 뽑는다고 하면 듣기 과외가 유행하고, 내신으로 뽑는다고 하면 내신 과외가 성행하고, 구술면접으로 뽑는다고 하면 구술면접 학원이 판을 치고, 필기 시험으로 뽑는다고 하면 그에 맞춘 학원이 물 만난 고기가 되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뽑겠다는 것 역시 이에 대비한 사교육을 불러올 것이 뻔히 예상된다.
즉, 어떤 방법이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외고에서 가려서 뽑을 수 있다는 학생 선점 특권을 차단하는 개혁안이 아니면 효과를 발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외고 개편안에서 도입한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말만 새로운 것이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며, 사교육을 잠재우고 우리 공교육을 구할 '백마 탄 기사'가 될 수도 없어 보인다.
미봉책 불과한 교과부 외고 개편안은 '무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