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음성 김주태 가옥의 사랑채.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위엄을 느길만 하다.
하주성
사대부가의 위엄이 서린 사랑채이완 장군이 어린 시절에 살았다는 김주태 가옥은 사대부가의 위엄을 그대로 지닌 고택이다. 김주태 가옥은 300여 년 전에 건립하였다고 하지만, 이완 장군이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전하는 것으로 보아, 400년 가까이 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당시의 집이 현재의 김주태 가옥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안채는 19세기 중엽, 사랑채는 상량문에 고종 광무 5년인 1901년에 지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을 뿐이다. 김주태 가옥의 사랑채는 솟을대문을 지나 석축으로 2단의 축대를 쌓고, 그 위에 ㅡ자로 사랑채를 앉혔다. 남향으로 지어진 사랑채는 지체 높은 사대부가의 위엄을 그대로 보여준다.
솟을대문에서 사랑채를 오르려면 계단을 올라 앞마당이 있고, 그 위에 축대를 올려 사랑채를 지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랑채는 솟을대문의 지붕과 같은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대문을 들어서 사랑채를 마주하면 좌측으로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다. 아궁이는 앞에서는 벽으로 막혀 볼 수가 없다. 우측 끝에는 누마루를 한단 높여 누정과 같은 효과를 내었다. 전면 모두 창호로 문을 냈으며, 뒤편에는 작은 문을 만들어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이 지어진 집이라는 느낌이다.
대문채의 비밀김주태 가옥의 대문채에는 방이 없다. 대문의 양 편으로는 곳간을 들였다. 그런데 이 대문을 자세히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대문을 마주하고 우측을 보면 작은 문이 하나 있다. 쪽문이라고 하는 이 문을 열면, 천정이 낮은 곳으로 허리를 굽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즉 대문을 열지 않고도, 이 문으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만들었다. 이 문은 언제 사용하였을까? 혹 사랑채에서 바라보면 대문으로 드나들기가 버거운 하인들이 이 문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을까? 고택을 답사하면서 나름대로 생긴 질문과 답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고 답을 하는 재미를 느껴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