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애인의 날인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기초생활보장예산과 장애인복지예산 확대 등을 요구하며 국회 인간띠 잇기를 시도하다가 경찰들에게 저지되고 있다.
유성호
[3신 : 오후 1시] "사회적 약자 눈물이 4대강물 보다 깊어질 것"경찰 '인간 띠 잇기'로 장애인 이동 원천봉쇄, 기습시위는 아직 진행 중
"기습적으로 할 겁니다."3일 오전 9시경 휠체어를 끌고 건물 밖으로 나온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에게 "'인간 띠 잇기' 행사를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이다. 장애인단체 회원 50여명은 전날(2일) 밤 장애인 단체가 상주해 있는 국회 앞 이롬센터 지하에서 잠을 잤다. 이날 오전 일찍 국회로 가서 장애·복지예산 확충을 위한 '인간 띠잇기' 등의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미 국회 주변은 수백 명의 경찰이 곳곳에 배치된 상태였다. 박경석 대표가 2~3명의 활동가를 이끌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곧바로 사복경찰이 따라 붙기도 했다. 경찰도 경찰이지만, 휠체어에 몸을 의지해야 하는 이들에게 '기습 시위'는 애초부터 무모한 도전이다. 대부분 전동휠체어이기는 하지만 최고속도가 12km/hr 불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기습 시위'를 하겠단다. 사실 달리 방법도 없다. "기습 시위가 가능하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언어 장애를 가진 한 장애인은 띄엄띄엄, 그러나 분노에 찬 목소리로 "그럼, 이렇게 앉아서 죽으라는 말이냐"고 호통을 쳤다. 절박한 심정이 이들을 불가능에 도전하게 만든 것이다.
경찰들도 궁금했나보다. 박경석 대표에게 다가온 한 사복경찰도 "정말 인간 띠잇기를 할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인권단체 활동가가 "우리 숫자가 적으니, 경찰들 하고 같이 하면 되겠다"며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런데 말이 씨가 되고 말았다.
휠체어 타고 '기습 시위'?... '인간 띠 잇기' 원천봉쇄한 경찰오전 9시 30분경, 장애인들이 한 명 두 명 건물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자, 갑자기 경찰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이어 경찰들은 순식간에 장애인들이 집결해 있던 이롬센터를 양 방향으로 에워쌌다. 정말 경찰들이 '인간 띠잇기'를 한 것이다. 물론 국회가 아니라 장애인들을 가운데 두고 말이다.
경찰은 개인적인 볼일을 보겠다며 인도를 이용해 이동하는 장애인들도 막아섰다. 심지어 집에 가려고 지하철 역사 안으로 들어간 장애인조차 다시 데리고 나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인간 띠' 안으로 집어넣었다. 장애인들은 "왜 인도를 막느냐"고 항변했지만, 경찰은 "불법 시위를 하기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직 시위는 시작도 안됐는데, 이미 이 장애인들은 '범법자'가 된 셈이다.
분노한 장애인들은 힘껏 휠체어를 전진시켜보지만, 역부족이었다. 경찰을 밀치려고 팔을 뻗었지만 허공을 허우적거릴 뿐이다. 뭔가 항의를 해보고 싶었지만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한 여성 장애인은 분을 참지 못해 울부짖었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휠체어에서 떨어지는 장애인들도 있었고, 어떻게든 경찰을 뚫고 국회로 가기 위해 일부러 휠체어를 버리고 빗물에 젖은 바닥을 기어가는 장애인도 있었다. 물론 달려오는 전동휠체어가 경찰 방패에 부딪힐 때, 뒤에 선 경찰들이 부상을 입는 등 위험한 순간도 벌어졌다.
이도 저도 안 되자, 장애인들은 당초 국회에 붙이려고 준비했던 '국회 재개발 계고장' 스티커를 경찰들의 방패에, 옷에, 얼굴에 붙이기 시작했다. 기습시위는 시도조차 해보지 못한 채 경찰들의 원천봉쇄를 뚫지 못하고 30여 분간 항의하던 장애인들은 다시 이롬센터 안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