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소설 <구월의 이틀>은 문학소년 '은'을 내세워 새로운 우익의 모습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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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살던 '금'은 오랫동안 풀뿌리 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관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를 따라서 '금'은 서울로 상경한다.
원래 법대에 가려고 했지만 성적이 모자르자 대신 정치외교학과를 선택했다. 광주의 호남아 금은 권력 욕심이 난다. 무언가 제대로 된 공부를 해보고 싶다는 치기와 배포가 있다.
한편 부산의 문학소년 '은'은 사업으로 패가망신한 아버지를 따라 상경하며 금과 같은 학교의 교육학과에 입학한다. 은이 가진 문학적 감수성은 놀라운 것이었지만 어머니의 뜻을 따라 문예창작학과를 포기하고 말았다.
줏대 없이 사는 은은 스스로에게 다분한 혐오감을 느끼고 있다. 금과 은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특이한 관계가 된 둘의 감정은 자석의 다른 극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게 된다. 허나 둘의 인생이 교차로를 지나듯 뒤바뀌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섬약한 문학소년 우익청년으로 거듭나기장정일은 소설의 제목을 류시화의 시 <구월의 이틀>에서 따 왔다. 구월의 30일 중 이틀이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찬란한 순간, 이제 막 대학생이 된 금과 은에게는 청춘의 순간일 터이다. 청춘의 이틀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동시에 어마어마하게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몰락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누구나 그런 '이틀'을 겪듯이, 금과 은도 이제 그 순간에 접어든 것이다. 장정일은 작가 후기에 이 소설을 '우익청년 탄생기'로 못박아두고 있다.
부당하고 부덕한 우파가 득세했고, 득세하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우익의 탄생'이란 결코 즐거운 재담이 될 수 없었다. 허나 장정일은 당당한 우익청년을 글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겠다는 배짱을 부린다. 그리하여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금이 아닌 은이다. 섬약한 문학소년이었던 은이 어떻게 강력한 우익청년으로 거듭나게 되느냐는 이야기다.
은을 통해 장정일이 세우는 우익의 기초는 '강한 것은 아름답다'는 근기다. 때문에 못난 이들은 잘난 이들 말에 고분고분 따라주어야 한다. 못 배우고 못 가진 것들이 어딜 감히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난리를 치느냐, 명문대 아닌 놈들에게는 천민 낙인을 찍어주어야 한다. 장정일은 바로 이런 순정한 엘리트주의, 엘리트의식이야말로 우익의 가장 기본이 되는 정신이라고 본다. 정말이지 난폭하기 짝이 없는 정신분석이지만 그래도 일견 타당한 구석이 있다.
장정일의 우익 정신분석이란 어떤 표본이 아니라 사회에 드러나는 현상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읽으면 되겠다. 재개발 사업이 꿀꺽 집어삼킨 용산의 비열한 거리를 보라. 용산구의 이름으로 "구청에 와서 생떼거리를 쓰는 사람은 민주시민 대우를 받지 못한다"고 써붙였던 경고판을 두고 어떤 이들은 '예고 살인'이라고 했다. 자본은 강력했고 철거민들은 무력했다. 우익청년 은에게는 당연한 약육강식 논리다. 약자에게 생존할 권리는 없다. 우익은 늘 강자의 편이기에 강력하고 또한 아름답다. 이는 우익의 본능적인 생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