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소년 캄쾀바는 왜 풍차를 만들었을까

[서평]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등록 2009.12.01 10:07수정 2009.12.0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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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쓰레기와 고철로 풍차를 만들어 전기를 생산한 열네 살 소년의 실화가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윌리엄 캄쾀바 지음,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펴냄)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번역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1년이면 3개월은 굶주림에 시달리고, 말라리아, 풍토병, 에이즈로 이웃과 친척이 속절 없이 죽어가는 아프리카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중학교 1학년을 중퇴한 14살 소년이 풍차로 전기를 만들어 낸다. 소년에게 풍차는 단순히 전기를 얻어내는 동력이 아니라 어둠과 굶주림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 태양처럼 꺼지지 않는 희망을 움켜 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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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 아프리카에 희망의 불을 켠 한 소년의 이야기 ⓒ 서해문집

"5년 전 아이디어가 떠올랐죠? 그게 뭐였죠?"
크리스가 물었다.

"풍차를 만들고 싶었어요." 또 틀렸다는 생각을 했을 때 크리스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엇을 했죠? 그걸 어떻게 실현을 했나요?"
나는 심호흡을 하고 최선을 다해 말했다.

"학교에서 중퇴하고... 도서관에 갔어요... 풍차에 대한 정보를 얻었어요......"
나는 나를 재촉했다. 계속해야 해. 계속 얘기해야 한다고.

"그리고 난 해보고 만들었어요."


청중이 내 형편 없는 영어 때문에 웃음을 터뜨릴 거라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박수 소리만 들렸다. 박수만 치는게 아니라 자리에서 일어서서 환호하기까지 했다. 마침내 내 자리로 돌아오면서 보니 어떤 사람들은 울고 있었다. 그 모든 고통스러운 나날들, 기근과 가족들에 대한 끊임없는 걱정, 학교 중퇴, 아버지의 슬픔, 캄바의 죽음, 아이디어를 개발할 때 놀림 받던 것...... 그런 일들을 겪고 마침내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 책 인용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물을 훔쳐냈다. 최선을 다해 뭔가를 해보지도 않은 채, 사소한 일로 삶에 절망하고 있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소년은  굶주림, 비아냥, 몰이해 그 모든 것을 견뎌내며 풍차를 만들어 풍차에 자신의 희망을 달아 날렸다. 독자들도 책을 읽으며 자기만의 희망을 달아 바람결에 높이 날릴 것이다. 글만 읽어도 감동이 밀려오는데 직접 이야기를 들은 이들이라면 어찌 해일과 같은 거대한 감동이 밀려오지 않겠는가. 


소년의 생을 바꾼 한 권의 '책'

'캄쾀바'는 말라위의 카승구라는 마을에서 옥수수 농사와 담배 농사를 거들며 사는 소년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반바지 대신 하얀 티셔츠에 긴바지를 입을 수 있는 중학생이 되어 꿈을 가꿔 가려던 소년은 80달러의 학비를 낼 수 없어 강제 퇴학을 당한다. 14살 소년이 찾아간 곳은 초등학교 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에는 미국 정부가 기증한 책이 잔뜩 있었다. 소년은 학교를 못가는 동안 머리가 굳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열심히 교과서를 읽는다. 어려서부터 손재주가 뛰어나고 과학에 호기심이 많았던 캄쾀바는 <말라위 중등 통합 과학>, <물리 설명하기>를 통해 기초 과학 지식을  차근차근 쌓아간다.

어느 날, 모르는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집으려 쭈그려 앉은 소년의 눈길이 <에너지 이용>이라는 미국 교과서에 머문다. 책 표지에는 길게 늘어선 풍차들 그림이 있었다. <에너지의 이용>이라는 그 한 권의 책이 소년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소년은 책을 통해 풍차를 이용해 물을 길어 올리고, 곡식을 빻으며, 풍력기지에서 전기도 생산해 낸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소년은 굶주림과 어둠의 감옥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풍차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책에서 얻은 지식을 토대로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풍차로 전기를 만들어낸다. 14살 소년은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전 지구에 증명해 보인 것이다.

풍차와 펌프가 있으면 엄마가 1년 내내 뜰에서 토마토, 감자, 양배추, 겨자, 콩 등을 길러 먹거나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아침을 거를 일도, 학교를 그만두는 일도 없을 것이다. 풍차만 있으면 마침내 어둠과 굶주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밤이든 낮이든 한결같이 나무 꼭대기로 불어오는 바람은 하느님이 말라위에 주신 몇 안 되는 선물이었다. 풍차는 그냥 동력이 아니라 자유를 의미했다.
- 책 인용

자유를 얻기 위해 풍차를 만드는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다. 미쳤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 끝없이 이어지는 배고픔, 부품 하나 구할 수 없는 현실, 그 모든 악조건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찬란한 불꽃을 피워 낸 소년의 의지가 부러웠다.

그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자기 앞의 생을 헤쳐 나갈 용기, 지혜, 창의력과 도전 정신을 배우지 못한 내 아이나 나라면 어떠했을까? 책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 그 길을 쉬지 않고  걸어 온 소년은 풍차에 희망의 날개를 달고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소년의 비상의 날갯짓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단순한 물질적 도움만은 아니다. 그가 하는 일을 끊임없이 격려해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수많은 풍차 소년들의 탄생을 위하여.

도서관의 책에서 본 사진들이 내게 아이디어를 주었고 굶주림과 어둠이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이 길고도 놀라운 여정에 나섰던 것이다. 나는 거기 서서 어디로 가야할까를 생각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이 먼 곳까지 왔으니 이제 내 미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한없이 펼쳐진 풍차들의 나라를 바라보았다. 언덕들이 날개의 회전에 맞추어 춤을 추는 것 같았다. 한참 바라보니 그들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여기서 결정할 필요는 없다고. 아프리카로. 학교로 돌아가 그리도 오래 빼앗겼던 삶을 살라고.

그 후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어쩌면 난 그 풍차들을 연구하고 세우는 법을 배워 말라위의 푸른 들판에 나만의 풍차 숲을 만들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것처럼 간단한 풍차 만드는 법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 그들이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전기와 물을 공급하게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두 가지 일을 다 할지도 모른다. 무엇을 하든 난 내가 배운 한 가지를 기억할 것이다. 뭔가를 이루고 싶으면, 해 보아야 한다는 걸.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윌리엄 캄쾀바, 브라이언 밀러 지음, 김흥숙 옮김,
서해문집, 2009


#바람을 길들인 풍차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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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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