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속 부처를 '캐낸', 대단한 신라 석공들

[여행] 감동의 마애불, 경주 남산 칠불암에서 만나다

등록 2009.11.30 11:23수정 2009.11.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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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경북 경주시 남산동)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경북 경주시 남산동)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김연옥

신라 천년의 역사와 함께한 경주 남산. 신라 사람들이 가장 신성시한 산으로 온갖 전설과 함께 석탑, 석불, 절터 등 불교 유적뿐만 아니라 왕릉, 궁궐터, 산성지(山城址) 등이 남아 있어 신라 문화가 집결된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남산에 가 보지 않고는 신라를 안다 할 수 없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마침 지난 22일, 경주 남산으로 산행을 떠나는 산악회가 있어 그들을 따라나서게 되었다. 남산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을 비롯한 4개 동과 내남면 용장리 등에 걸쳐 있는 산이다. 북쪽의 금오봉(金鰲峰, 468m)과 남쪽의 고위봉(高位峰, 494m)을 중심으로 남북이 8km, 동서가 4km이며 불곡, 삼릉계곡, 용장사곡 등 40여 개의 골짜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전 7시 40분께 마산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용장3리(경북 경주시 내남면) 틈수골에서 내려 경주국립공원 남산지구 입구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0시께였다. 꽤 가파른 길이 한참 이어져 숨이 절로 색색거려졌다. 그러나 소나무들이 많아 기분이 상쾌했다. 물론 편백나무가 단연 으뜸이겠지만 소나무도 피톤치드를 많이 내뿜는 나무로 알려져 있지 않는가.

천룡사지삼층석탑(天龍寺址三層石塔, 보물 제1188호)  
천룡사지삼층석탑(天龍寺址三層石塔, 보물 제1188호) 김연옥

그렇게 30분쯤 걸어갔을까. 9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천룡사지삼층석탑(天龍寺址三層石塔, 보물 제1188호)을 볼 수 있었다. 천룡사 옛터에 넘어져 있던 것을 1990년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박물관 조사단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한다. 단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웠고, 탑 높이는 6.75m이다. 현재 모습은 부족한 부재(部材)를 보충하여 복원한 것으로 발굴 당시 기단 일부와 머리장식 대부분이 없어지고 파손되었다 하니 본디 어떤 모습이었는지 자꾸 궁금해진다. 

고위봉 정상에 오른 시간은 10시 55분께. 정상 표지석 사진을 찍은 뒤 나는 곧장 칠불암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번 산행 길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이 칠불암 마애불상군이라 내 마음은 적이 들떠 있었다. 봉화대를 거쳐 20분 정도 더 가자 칠불암이 나왔는데, 그곳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바위들이 많은데다 다시 올라와야 하는 것이 성가시다며 그냥 지나쳐 버리는 산객도 있었다.

칠불암  
칠불암 김연옥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과 사방불(四方佛)로 이루어져 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과 사방불(四方佛)로 이루어져 있다. 김연옥

칠불암 마애불상군(국보 제312호, 경북 경주시 남산동)을 본 순간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나는 정신없이 디지털 카메라에 그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통일신라 시대인 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칠불암 마애불상군은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과 사방불(四方佛)로 이루어져 있다. 뒤쪽 병풍바위에 삼존불을 새겼고, 1.74m의 간격을 두고 앞쪽 모난 돌 4면에도 각각 불상을 새기어 모두 칠불(七佛)이 되었다.

삼존불 가운데 있는 본존불(本尊佛)은 화려한 연꽃 위에 앉아 있다.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고 왼손은 배 부분에 대고 있는 항마인(降魔印)을 하고 있다. 양감 있는 얼굴에 풍만하고 당당한 자세로 자비로운 부처님의 힘을 드러내고 있었다. 좌우 협시보살 입상은 크기가 같고 온몸을 부드럽게 휘감고 있는 옷을 입고 있다. 사방불은 모두 연꽃이 화사하게 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방향에 따라 손의 모양을 달리하고 있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뒤쪽 병풍바위에 삼존불을 새겼고, 1.74m의 간격을 두고  앞쪽 모난 돌 4면에도 각각 불상을 새기어 모두 칠불(七佛)이 되었다.
칠불암 마애불상군. 뒤쪽 병풍바위에 삼존불을 새겼고, 1.74m의 간격을 두고 앞쪽 모난 돌 4면에도 각각 불상을 새기어 모두 칠불(七佛)이 되었다. 김연옥

깊은 산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웅대한 불상이 있다니 그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감탄만 할 수밖에 없었다. 경주 남산에는 수많은 석탑과 석불이 남아 있는데, 특히 마애불의 보고(寶庫)라 할 만큼 마애불이 많다. 하나의 산에서 이토록 많은 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은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이유로 남산은 작으면서도 참으로 큰 산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영재로 가는 도중에 적당한 곳에 자리 잡고 점심을 함께했다. 달콤한 복분자술을 비롯하여 집에서 담은 돌복숭주 등을 곁들이니 얼근히 취기가 도는 듯해 괜스레 기분도 좋았다. 오후 1시 25분께 금오봉 정상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잠시 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상사바위를 지나 삼릉계곡마애석가여래좌상(경북유형문화재 제158호, 경북 경주시 배동)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는데 한창 주변 정비공사 중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아쉬웠다.


금오봉 정상에 오른 오솔길 산악회 회원들의 모습.  
금오봉 정상에 오른 오솔길 산악회 회원들의 모습. 김연옥

상선암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도 불렸던 그 마애불은 높이 7m, 너비 5m나 되는 거대한 자연 암벽에 6m 높이로 새겨져 있는데, 속세의 중생을 굽어보는 듯한 자비와 위엄이 서려 있어 그런지 그 불상 앞에는 늘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상선암을 지나서 일명 얼음골이라 부르는 삼릉계곡의 왼쪽 능선 위에 있는 삼릉계석불좌상(보물 제666호, 경북 경주시 배동)을 보러 갔다. 마침 주변 정비공사까지 거의 끝낸 상태라 가까이에서 불상을 볼 수 있었다.

삼릉계석불좌상(보물 제666호, 경북 경주시 배동)  
삼릉계석불좌상(보물 제666호, 경북 경주시 배동) 김연옥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 김연옥

복원된 불상의 모습과 분위기가 예전 자료와 좀 달라 당황스러웠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옛 모습이 더 정이 든다. 거기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거리에 삼릉계곡선각육존불(경북유형문화재 제21호)이 있다. 선각(線刻)으로 두 개의 바위면에 각각 한 쌍의 마애삼존불을 새겼다.

그런데 신라 석공들은 어쩌면 돌 속에 부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마치 마음 흐트러짐 없이 혼신의 힘으로 돌 속에 숨어 있는 부처를 캐낸 듯한 신비함이 장엄한 감동이 되어 내게 밀려왔다.

삼릉계석조여래좌상 조선 시대의 억불 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1964년에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된 그 불상은 머리가 없다.
삼릉계석조여래좌상조선 시대의 억불 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1964년에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된 그 불상은 머리가 없다.김연옥

그곳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머리가 없는 삼릉계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조선 시대의 억불 숭유 정책 탓이었을까. 1964년에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된 그 불상은 머리가 없다. 머리 없는 불상이 주는 충격적 분위기는 옷 주름, 가사(袈裟)의 매듭과 매듭에 달린 술까지 섬세하고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된 아름다운 몸체와 함께 기억에 오래 남으리라.

배리삼릉(사적 제219호, 경북 경주시 배동)  
배리삼릉(사적 제219호, 경북 경주시 배동) 김연옥

오후 2시 40분께 배리삼릉(사적 제219호, 경북 경주시 배동)에 도착했다. 남산 서쪽 기슭에 동서로 3개의 왕릉이 나란히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박씨(朴氏)인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나, 확실한 기록이 없는데다 신라 초기의 아달라왕과 무려 700여 년이란 시간적 가격이 있는 두 개의 왕릉이 한곳에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설이 있다. 그런데 소나무들이 신기할 정도로 삼릉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인상적이었다. 마치 능을 호위하는 충성스러운 병사들처럼 말이다.

신라 사람들의 신앙터이면서 불교미술 창작을 위한 연습장이기도 했고, 생활 터전이면서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했던 경주 남산. 불상을 하나씩 하나씩 만나는 설렘과 기쁨으로 산행을 하면서 남산을 오르지 않고는 신라를 말할 수 없음을 실감한 하루였다.
#경주남산 #칠불암마애불상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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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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