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길 위에 늘어선 친구들,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듯 하네요.
이화영
직장 친구들은 어떨까? 내가 근무하는 직장에는 640여 명의 직원들이 있고 그중 5% 정도인 30여 명이 70년 개띠다. 이중 남녀 25명 정도가 뜻을 함께하고 '견우직녀'란 이름의 모임을 만들었다. 이런 이름을 정한 데는 애틋한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견'자가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다.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학교도 다르고, 직장 내 직급이나 근무 년수도 다르지만 나이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됐다. 모임은 4년째를 맞았다.
한 직장에 근무하면서 같은 고민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정기모임은 통금시간을 넘기기 일쑤다. 모임을 만들기 전 서먹했던 관계는 친구사이로 바뀌었고, 업무적으로도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했다.
직장에서 견우직녀 모임을 모르면 신입직원일 정도로 극성스럽게 단합하고 끈끈한 정으로 뭉쳐있다. 친구들 몇몇이 모여 있으면 선배들은 "개들 또 모였네"라며 부러운 눈총을 쏜다.
직장 후배들이 "연세 잡수실 대로 잡수신 분들이 초딩들처럼... 나잇값 좀 하세요"라고 말하면 "이병헌, 김혜수, 정준호, 머라이어 캐리 등등 우리 친구들이 연예계에서 얼마나 큰 활약을 하는데"라며 건재함을 과시하곤 한다.
'개들 또 모여서' 일상 탈출하다
이 친구들과 만으로 30대 마지막을 추억으로 남기기 위해 일상탈출을 준비했다. "난 김장하는데, 처제 결혼식이 있어서, 어쩌지 이삿짐 싸야 하는데, 아기 봐야 돼, 일이 밀렸어" 등등 못가는 친구들의 아쉬운 한숨을 뒤로하고 친구 7명이 소풍을 떠났다.
우리가 찾은 곳은 경북 문경. 철로 위를 달리는 낭만 자전거 레일바이크를 타기 위해 진남역으로 향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탐스런 홍시와 아담한 간이역이 우리 일행을 맞는다. 삶에 쉼표를 찍기엔 더 없이 포근한 모습이다. 느림과 낭만, 소박하지만 정겨움이 묻어난다.
이곳은 20여 년 전 석탄을 실어 나르던 철로였지만 지금은 여행객들에게 색다른 추억을 선물하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했다. 경북 팔경 중 제1경으로 꼽히는 진남교반과 영강천을 끼고 달리는 코스로 왕복 4km 40분 정도가 소요된다.
3만원을 주고 레일바이크 3대를 예매하고 출발 전 간이식당에서 어묵으로 간단히 요기했다. 모두들 초등학교 소풍 나온 아이들처럼 들뜬 표정이다.
"며칠 있으면 만 나이지만 30대라고 우기지도 못 하겠네.""이제는 완전 40대지, 늙었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아직 10대야.""어르신들이 들으면 욕하겠다. 어린 것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다고...""그분들이 들었으면 이랬을 거야, '짜식들아 나는 40대에 철근을 씹어 먹어도 소화시키고 쌀을 3가마니씩 지고 다녔어, 까불고 있어'."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신나게 레일바이크 폐달을 구르기 시작했다. 촌놈 마라톤이 이런 건가, 수월한 코스였지만 이내 저질체력을 드러내더니 결국 선수교체를 해야 했다.
"거봐, 담배 끊고 평소에 운동 좀 하지." 친구의 핀잔이다.
다음코스는 섹시 가수 이효리가 탔다는 '짚 라인(Zipline)'이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문경 불정자연휴양림에 설치된 짚 라인은 나무와 나무사이를 와이어로 연결하고 여기에 도르래를 걸어 이를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레포츠다.
정글 지역의 원주민들이 맹수나 독충 등을 피하기 위해 계곡 사이에 로프를 걸어 이동한 것이 짚 라인의 시초란다. 군대의 유격훈련을 떠올리면 된다. 하늘을 비행하는 스릴이 장난이 아니다. 별도의 고가 장비나 교육 훈련이 필요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체험할 수 있으며, 1회 이용료가 5만원으로 다소 비싼 것이 흠이다.
이곳 짚 라인은 난이도에 따라 80∼360m 등 9개 코스로 나뉘어 져 있다. 전체 길이는 1.3㎞다. 이동할 때 지상에서의 높이는 40∼50m 정도며, 전체 코스 이용 시간은 2시간 30분 정도다. 360m 코스를 이동하는 데 30초 가량 걸리고 시속 6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단다.
무섭다며 타기를 꺼려했던 친구들도 완만한 코스를 체험하고 나서는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주변 경치까지 구경하며 즐겼다고 여유를 부렸다.
짚 라인 안전요원은 흥미를 더해주기 위해 뒤로 또는 누워서, 풍선을 불면서 타도록 안내했다. 코스별로 퀴즈를 내고 답을 맞힌 친구의 헬멧에 스티커를 붙여줬다. 가장 많은 스티커를 확보한 친구에게는 선물이 주어졌다.
어느새 9개 코스를 돌고 짚 라인 탑승 수료증을 받는 시간. 친구들은 선생님에게 상장을 받는 초등학생이라도 된 듯 환한 미소와 함께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로부터 수료증을 받았다. 다음에 이용할 경우 4인까지 10%를 할인 받을 수 있는 카드도 함께 받았다.
짧았지만 정겨움이 가득한 소풍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버섯전골과 돼지불고기로 늦은 오찬을 하고 일상탈출에 마침표를 찍었다. 70년 개띠 친구들과 함께 한 행복했던 소풍의 여운이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