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만한 크기의 생강 열다섯 쪽이 이렇게도 대폭 새끼를 쳤다. 우리집 개 마루가 매일 생산한 개똥이 이렇게도 대단한 위력을 보였다.
김수복
그나저나 이 많은 생강을 어떻게 하지? 갑자기 난감하다. 이 많은 생강을 어머니와 둘이서 소비한다는 것은 말이 아니다. 생강차를 만들까 생각도 해보지만 작년에 사서 만든 생강차가 아직 제법 남았다. 하여 누군가와 나눠먹기로 하고 그 누군가를 생각해 보는데 떠오르는 얼굴이 한둘이 아니다.
이 사람과 나눌까 하고 보면 저 사람이 서운하고, 저 사람과 나누자 하고 보면 또 그 사람이 섭섭하다. 아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차라리 모르는 사람과 나누자, 하고 모르는 사람을 생각해 보려고 하니 이게 또 이상하다. 모르는 사람을 내가 어찌 생각해낼 수 있단 말이냐, 그렇다면 모르는 그 누군가를 찾아 나서야 하는가?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러고 보면 사람이 이게 참 그런 모양이다. 행복이 가득하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잘 없는 모양이다. 하긴 게으름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이요 일란성 쌍둥이지 싶기도 하다. 어머니가 옆에 안 계셨을 적에 나는 딱히 무슨 하는 일도 없이 늘 바빴었다. 마음이 바쁘다 보니 매사가 두루춘풍이요 주마간산이었다. 꽃씨를 뿌려놓고도 꽃이 피면 아 피었구나, 예쁘다, 향기도 좋다, 했을 뿐 그것이 어떻게 자라서 어떤 모양으로 피어나고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도시에 안녕을 고하고 농촌으로 내려올 때 나는 게으르게 살자, 게으름 속에 행복이 있나니, 등등 잠언 같은 것들을 머릿속에 잔뜩 넣어두고 있었다. 그 뒤로 십이 년, 나는 행복했던가? 글쎄, 사람은 행복한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 행복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한 채로 다른 것만 좇는다는 말이 얼핏 생각난다. 행복은 저기에 있다고, 저것을 잡아야만 한다는 초조감에 포박된 도시에서의 행동거지를 고스란히 되풀이하고 있었다는 얘기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금년에 이르러서야 게으름에도 품질이 있고 등급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어렴풋이, 그야말로 어려풋이일 뿐이다. 그러니 이것을 온전히 알기까지는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지 모를 일이다. 아니다. 사실은 이런 생각도 말아야 한다. 이런 생각, 이런 계산도 아마 하나보다는 둘이 좋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좋다는 얄팍한 욕망의 연장이라 해야 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어렵다. 어렵다고 생각하고 들여다보면 더욱 어렵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만 있다면, 몸으로 느낄 수만 있다면, 보고 느낀 그것을 소처럼 되새김하며 음미할 수만 있다면 어려운 것도 쉬운 것도 분별할 필요가 없이 그 자체로 내게 유용한 양분이 될 테지만 나는 아직 그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이 언덕을 넘어서고 나면, 그때 나는 아마 생강이 너무 많다고 누구와 나누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고 나 자신에게 하소연하는 이런 우매함으로부터 벗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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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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