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지집김동수 가옥의 담장 밖에 있는 여덟채의 호지집은 노비집이라고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노비가 아닌 사병이 묵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하주성
아마 생각해보건 데 이 김동수 가옥의 규모로 보아 지역의 부농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김동수 가옥에서 보이는 많은 곳간과 헛간들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 많은 양의 곡식과 재물이 있는 김동수 가옥은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재물을 지키기 위해 사방에 집을 짓고, 집을 수호하는 역할을 준 것이란 생각이다. 그러기에 단순히 노비집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고, <호지가(護持家)>라고 했을 것이다. 즉 이 호지집에 묵는 노비들은 일을 하기 위한 노비이기보다는, 집을 지키는 경계의 업무를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으로 본다면 호지집에 사는 사람들은 기실 노비가 아닌, 노비로 가장한 김동수 가옥을 지키는 사병(私兵)이었을 확률이 더 크다.
대문채와 마주한 사랑채는 전국에서 단연 으뜸김동수 가옥은 행랑채라고 부르지 않고 대문채, 혹은 바깥사랑채라고 부른다. 행랑채에도 많은 손님들이 묵었다는 설명이다. 주인을 찾아오는 외부의 손님을 행랑채에 묵게 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바깥사랑채 혹은 대문채라 한 것으로 보인다. 대문채는 솟을대문 좌우에 담을 쌓아 건물로 사용을 했으며, 담장에 나 있는 대문을 들어서면 좌, 우측에 곳간과 마굿간 방, 대청 등이 자리한다. 곳간의 넓이로 보아서도 이 집의 부(富)가 상상이 간다. 대문채를 들어서 우측에 마굿간 등이 있으며 꺾인 북쪽에 있는 칸에도 방을 두 칸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