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난, 서른 살이 되면 '카리스마' 넘치는 커리어우먼이 돼 있을 거라 생각했다. 사진은 KBS 드라마 <열혈장사꾼>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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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다들 조연출이 하는 일이 뭔지는 알겠지만, 안 되는 일 없이 뭐든지 되게 해야 하는 게 조연출 아닌가. '없는 것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정신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당시 일했던 방송국은 인천에 있었는데, 집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방송국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한 번은 방송국 냉장고에 넣어둔 삼각김밥을 먹고 극심한 장염에 걸려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정말 뒤도 안 돌아보고 열심히 일했다.
방송국에서 일할 땐 엑스트라가 모자라면 엑스트라가 되기도 했고, 담당하는 프로그램 예고를 만들기도 했고 프로그램의 일부분을 편집하기도 하면서 연출가의 꿈을 키워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오마이뉴스> 방송팀에서 6개월간 일하게 됐고, 그때도 여러 현장을 오가며 많은 경험을 했다. 사실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나오는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뿌듯하다(잘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렇다. 난 이런 사람이었다. 근데 왜 지금은 빈털터리냐고(사실 빈털터리는 아니다. 아직 내 통장엔 잔고 100만원이 있으니까!)? 3년 전 진로를 급선회해 다시 학생의 길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쯤에서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다. ''촉.망.받.는'이라더니, 왜?'라고.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세상이란 게 나만 잘한다고 다 되는 게 아니다. 나도 잘하고, 주변 환경도 어느 정도 받쳐줘야, 일이 잘 풀린다. 그때는 그랬다. 방송일이 즐겁긴 했지만, 밝은 미래를 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
20대에 10년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더니...누가 보면 정말 대단하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 나이에 다시 공부할 생각을 하다니…'라고 말이다. 그랬다. 머리가 굳어 공부가 힘든 것도 힘든 건데, 그때까지 누리고 있던 모든 것(다달이 나오는 월급과 보너스, 사내커플에 대한 로망?)을 눈물을 삼키며 포기해야 했다.
물론 다시 학교로 돌아가선 '20대 후반'이란 나이에 맞지 않는 철없는 짓들도 좀 했다. 학교 간다고 집을 나서서는 조조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고, 수업 땡땡이 치고 집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걸은 적도 있다. 어쩌면 '고딩'들도 잘 하지 않는 그런 '유치한' 짓들을 서른을 코앞에 두고 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잠시 동안 늦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을 쯤, '이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는 불안이 엄습했고 그 불안은 '열공'으로 이어졌다.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돌변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낙오자'라는 낙인이 두려웠을 수도.
여하튼 그 공부라는 것, 생각보단 해볼 만했다. 나이가 들어 뒤돌아서면 잊어버리고, 한 번 볼 것 두 번 봐야 하는 크나큰 단점이 있긴 했지만 책의 내용과 인생을 접목 시켜 이해하려고 했더니, 어렵지 않았다. 어렸을 때처럼 무조건 억지로 외우기보단 쉽게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게 먹혀든 것 같다.
누군가는 '공부가 제일 쉬웠다'고 말했지만, 나이 든 내가 겪어본 결과 제일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니까 되더라'라는 경험은(사실 짧은 시간에 많을 일을 겪은 나에게 이젠 모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10년 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주를 가진 나에게 조금은 희망이 된 것 같고 앞으로 내가 어디선가 '열공'의 기운이 필요할 때 도움이 된 듯하다.
물론 젊은 피들의 그 총총한 눈빛과 지칠 대로 지쳐 퀭해진 내 눈빛을 비교해보고 있노라면,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혹시 나같이 나이 서른 가까이에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한 번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적극 강추다.
서른, 다시 '면접'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