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9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의 개회사가 시작되자 '언론악법 원천무효', '날치기 주범 김형오는 사퇴하라'라고 적힌 손피켓을 들어보이며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유성호
대기업의 이익을 옹호하는 전위대로 변신한 파월의 FCC는 언론개혁 단체와 일반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2003년 여름 대기업과 보수 거대 미디어의 주장을 반영하는 정책을 실행하기에 이른다. 대기업과 거대 언론들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지만 언론의 사명은 뒤로 하고 상업적인 이익을 앞세우는 대기업 재벌 언론에 불만이 많았던 미국 국민들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했다. 수백만 명의 시민이 FCC와 상하 양원에 항의 전화와 메시지를 보냈다. 미국 역사상 일찍이 없던 일이었다. 언론개혁의 기수인 맥체스니 교수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 언론 개혁 운동에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여는 사건이었다. 거국적인 국민의 항의에 놀란 상원은 FCC의 신문방송 겸영 결정을 무효화하는 결의를 채택했다. 하원도 상원과 보조를 같이 했다. 연방 항고법원은 FCC의 결정이 미디어 다원주의 원칙과 충돌한다며 그 집행을 정지시키고 문제를 재검토하라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맥체스니 교수는 이제 언론개혁을 위해 책을 쓰고 언론에 기고하는 데 만족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 직접 언론개혁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위해 '자유언론(Free Press)'라는 언론개혁운동을 조직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된 것이다. 2004년에는 위스콘신 주 메디슨에서 미국 최초의 언론개혁운동 전국대회를 열었다. 잘 해야 200~300 명 정도 모이리라고 예상했던 대회는 언론개혁에 관심 있는 2000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리를 꽉 메워 주최 측을 놀라게 했다. 이후 미국에서는 주요 도시에 언론개혁 단체들이 분출하고 대기업 거대미디어의 언론 장악을 감시하고 반대하는 운동을 활발히 벌이고 있다.
2007년 12월 부시 대통령의 임기를 1년 남겨두고 FCC는 또 다시 "200 개 도시에 한해서"라는 조건을 달아 신문방송 겸영 결정을 내렸다. 부시의 "최후의 일격"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이번에도 언론개혁운동 단체들이 앞장선 국민 운동의 힘으로 수 십 만 명의 시민이 전국적인 항의운동을 벌여 상원이 압도적인 다수로 FCC의 결정을 무효화시키는 결의를 채택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조 바이든 등이 모두 결의에 참여해서 대기업 거대 미디어의 신문 방송 겸영 음모를 좌절시켰다. 2008년 대선 이후 대기업의 신문 방송 겸영에 반대하는 민주당이 백악관과 의회를 지배하고 있다. 미국의 대기업과 거대 미디어는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신문방송 겸영은 상상하기 어렵게 됐다.
조 중 동과 대기업의 방송 장악을 위해 밀실에서 소수의 머리가 밀조해 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디어 악법 파동"이 한국에서도 미국에서와 같은 언론개혁 운동, 신문방송 겸영 반대 운동의 새로운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대기업 언론 사주는 무적의 글래디에이터한나라당이나 이명박 대통령은 미디어법을 제안한 이유로 한국에도 미국의 타임워너 같은 글로벌미디어를 만들어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미디어 산업을 육성하고 수 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기 위한 것이라고 명분을 내세운다. 한국의 기업이 국제무대에서 선진국 대기업과 경쟁해서 외화를 벌어들이고 고용을 창출한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장밋빛 그림은 미국의 대기업들이 신문방송 겸영을 획책할 때마다 써먹던 낡은 수법이다.
미디어법 제안자들은 그 명분으로 미국 미디어의 예를 인용한다. 그러나 광의의 미디어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동의로 통하는 "뉴스 미디어"로서의 언론은 미국 언론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소수의 고급신문을 제외하면 미국 언론은 결코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세계 언론자유 평가 기관으로 인정받고 있는 파리의 '국경없는 기자회(RSF)' 통계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우선 2009년도 세계 각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보자. 1위는 덴마크 2위는 핀란드, 미국은 20위이다. 한국은 69위이다. 우리나라는 이명박 정권 이후 언론자유 순위가 2007년 39위에서 2008년 47위 그리고 금년에는 작년 보다 22위가 떨어진 69위로 밀려났다. MB정권 언론정책의 성적표다. 미국도 부시가 백악관에 들어선 다음 해 인 2002년에는 17위(이것은 사실 전임자인 클린턴 정권의 언론자유 지수이다), 2006년에는 아프리카의 보스와나와 동위인 53위로 처지다가 2007년에는 48위, 2008년에는 36위로 회복해서 오바마가 들어선 금년에 20위로 만회했다. 이런 미국 보수 정권의 언론 정책을 언론자유의 모델로 삼아야 되겠는가?
전반적으로 미국의 언론자유가 어쩌다 이렇게 추락했는가? 한마디로 대기업이 미디어를 장악하고 거대 미디어들이 언론의 본분보다 이익 올리는 데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도 기업이니 만큼 돈이 있어야 생존할 수 있다. 이익을 내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 그렇다고 이익을 제1목표로 삼고 언론의 사명을 망각하면 그것은 타락이다. 지금 자본주의 사회 언론의 타락은 제1 원인이 수익을 제일 목표로 삼고 언론의 본분을 망각하는데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언론도 기업이란 말은 맞다. 그러나 여느 기업이 아니다. 여느 기업일 수 없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대기업은 언론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것이다. 대기업은 이익을 최우선으로 삼는 상업조직이다. 이들이 언론을 운영할 때 언론을 수익을 올리는 도구로 이용하려 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현실이 그렇다. 대기업은 단순히 광고주에 불과할 때도 광고를 통해서 언론을 조종했다. 하물며 이들이 직접 언론을 소유할 때 어떻게 행동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대기업이 언론을 장악했을 때의 부작용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기 기업이나 관련 기업, 관련 인사들에 관련된 불리한 기사는 보도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회사 상품이나 기업 선전은 과장 보도한다. 상장 기업일 경우 주가를 올리기 위해 통계를 조작하기도 한다. 그 피해자는 국민이다. 일반 소비자다. 재벌은 정치에도 관여한다. 머독은 영국과 미국의 정치 방향을 조정하는 위력을 행사한다. 주로 보수 정당을 지원한다. 선거 때면 정치인과 정당은 미디어를 가진 재벌에 잘 보이려고 교태를 부린다. 대기업 언론 사주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에 거액의 정치 헌금도 납부한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정당은 재벌 언론의 "밥"이다. 대기업 사주는 창과 방패를 다 갖춘 무적의 글래디에이터이다. 돈과 막강한 언론을 한 손에 쥔 사람은 한 국가의 지배자일 뿐 아니라 세계의 새로운 지배자이기도 하다.
'언론권력-경제권력-정치권력'... 새로운 삼권분립을 강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