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의 가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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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더러 어쩌란 말입니까? 그 자리에서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잡혀 죽어야 했나요? 영웅 아버지처럼 위대하고 영광스럽게? 왜 나는 안준생으로 살 수 없었죠? 왜 나는 내 삶을 선택할 기회도 없이 이런 운명에 던져져야 했죠?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한 거잖아요, 그래서 죽은 거잖아요. 그런데 왜 나는 내 선택이 아닌 아버지의 선택 때문에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까? 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통째로 망가져야 합니까?…우습지 않나요? 영웅의 아들은 개 같은 삶을 살고, 그 변절자의 자식은 다시 성공하고…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지만 가족에겐 재앙이었죠. 나는 나라의 재앙이었지만 내 가족에겐 영웅입니다. - 책 속에서그의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가족을 버려야 했지만, 조국은 그 가족들을 돌보지 않았다. 일본의 감시를 피해 임시정부 사람들까지 모두 떠나버린 상해에 버려진 그의 가족들의 사정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그의 어머니는 변절 후 상해로 돌아온 안준생, 아버지를 팔고 돌아온 아들을 "고생했다"며 위로했을까. 가장을 잃은 김아려가 큰아들마저 독살로 잃고 남매를 부여잡고 고생하는 장면이 연상되어 가슴이 아리고 먹먹하게 읽힌 부분이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을? 어떻게?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란 제목을 보는 순간 '역사적 사실을 뒤집고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일본의 방해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던 안준생은 어느 날 미나미와 이토 히로쿠니(이토 히로부미 아들)에 의해 납치당해, 말을 듣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것이라는 협박을 받는다. 안준생의 변절에는 그를 이용하여 역사의 물줄기를 거꾸로 바꾸려는 일본의 검은 야욕이 숨어 있었다. 결국 죽은 이토 히로부미가 안중근과 우리 민족에게 복수를 한 것이다.
안중근 의사인가, 안중근 장군인가?이 책의 목적은 다음 3가지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첫째, 안중근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었다는 것. 개인이 아닌 독립군 장군으로서 거사를 치른 것이고 스스로도 법정에서 수차례 그런 주장을 밝혔으므로, 그 점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기억해주었으면 한다.…셋째, 거인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조국으로부터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채 결국 가슴 아픈 선택을 하고 만 안준생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었다. 단죄하고 묻어버리기보다, 지켜주지 못하고 변절자로 만들어버린 우리의 책임을 반성해봐야 할 듯했다. - 저자의 말 중에서이 중 첫 번째에 대해, 이제까지 우리들이 자랑스러워하며 무심코 써온 '의사'라는 말에는 하얼빈 의거가 민족적인 차원이 아닌, 독립을 위한, 독립군에 의한 조직적인 거사가 아니라, 한 개인(테러리스트)의 충동적인 복수에 불과한 사사로운 사건으로 처리하려는 일본인들의 의도가 깔려 있는 만큼 '장군'이란 호칭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안중근은 하얼빈 의거 당시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이었다. 안중근은 몇 차례의 재판과정에서 시종일관 자신의 신분을 '대한의군 참모중장 특파독립대장'이라 밝히고 "독립군으로서 민족적인 차원에서 거사를 단행했다"고 주장, 최후 진술에서도 "나를 처분하는 데는 국제공법, 만국공법에 의해 처분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힌다. 그러나 일본은 자신들의 목적 때문에 이를 묵살, 개인적인 일로 깎아내리고 만다. 당시 재판정 속기 자료를 근거로 이태진은 이에 대해 조목조목 제시한다.
"흔히 쓰고 있는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은 독립군 장군이었던 안중근을 개인이자 테러리스트로 격하시키기 위해 일본에서 사용을 유도한 잘못된 표현이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안준생의 존재를 전혀 몰랐다. 안중근 의사라는 호칭을 한 번도 의심해 본 적도 없다. 아니 자랑스럽게 붙였던 호칭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지 않을까.
지난 8월 안중근의 일대기를 그린 <안중근 불멸의 기록>이란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을 읽은 후 한 달 가까이 영웅 안중근의 삶이 시시때때로 떠오를 만큼. 그럼에도 단 한 번도 그의 사후 가족의 삶을 궁금해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참으로 쓰라리게 읽혔다. 안준생의 변절엔 우리 모두 책임이 있다는 자책과 함께라면 지나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