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변호사.
윤성효
희망제작소 총괄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가 '모금운동'을 강조했다. 그는 난치병 어린이 지원 단체인 생명나눔재단(이사장 박정수) 창립 5주년 행사로 12일 저녁 김해 장신대학교 강당에서 "희망을 향한 여정"이란 제목으로 기념강연했다.
생명나눔재단에 대해 그는 "여러분들이 해오신 일에 비하면 저는 훨씬 초라하다. 지역에서 이런 재단을 만들고 가꾸는 게 쉽지 않다. 저희들도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한다"고 말했다.
'사회 디자이너'라고 소개한 그는 주덕한 전국백수연대 대표를 소개했다. 그는 "출판기념회를 하는데 10명 정도 데리고 오더니, 먹을거리 먹고 나서 명함을 내놓더라. 미래에 가질 직업의 명함이었다. 얼마나 장한가. 집 안에만 있으면 정말 백수가 된다. 지금은 서울시로부터 지원을 받아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스스로 '공무원'이고 'CEO'라고 소개했다.
"조선시대 선비는 국가의 녹을 먹지는 않았지만 나라를 걱정했다. 위기가 생기면 앞장 서서 목숨을 바쳤다. 우리 사회에서 글을 배운 사람으로서 책임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무원이다. 그리고 CEO다. 얼마 전 일본의 한 잡지에서 '융합하는 기업과 NPO'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보도했다. 기업이 돈을 버는 것과 자선이 융합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광고는 완전히 자선단체나 다름이 없다. 착한 기업이 성공한다는 말이 있다. 비영리단체도 경영이다. 돈이 없으면 좋은 일을 어떻게 하나. 그래서 수입 모델을 생각하게 되었다." 박원순 변호사는 그가 변론하고 활동했던 몇 가지 사례를 소개했다. 1995년 '서울대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을 언급한 그는 "1심에서 이겼고 2심에서 졌는데 대법원에 계류 중일 때 우 조교가 결혼하게 되었다"며 "성희롱 당한 며느리를 누가 좋아하겠나. 그런데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성희롱특별법이 만들어졌고, 기관단체는 의무적으로 교육을 하게 되었다. 지금은 수많은 여성들이 그 혜택을 보고 있다. 역사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3년 전까지만 해도 휴대전화에는 전파사용료를 1만3000원이나 부담했다. 찾아보니 외국에는 없었다. 소송해서 이겼다. 한때 서울 지하철이 정시에 도착하지 않는데도 사전공지나 예고가 없어 지각하는 직장인들이 생겨났고, 피해자들을 모아 소송을 내서 배상을 받았다"면서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하는 서비스도 국민에 대한 채무이며 약속이기에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