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영웅> 이토 저격장면
에이콤인터네셔날
인상 깊었던 장면이 여럿 있지만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부분 연출이 백미로 느껴졌다. 잘 익은 술의 청주를 걷어 마신 느낌이랄까. 관객들이 가장 기대를 했던 부분이리라.
서로 첫 술을 걷어 마시기 위해 술독 앞에 줄지어 선 긴 행렬. 그러나 술독은 눈 깜짝하는 사이 총성 세 발에 박살나면서 행렬은 얼음처럼 굳어 버리고. 절제의 미학이 연출의 힘으로 느껴진 장면, 이토는 사라지고 박수만 남았다.
<영웅>의 영웅적인 행동을 왜 이처럼 가혹하게 절제했을까. 이토를 향한 세 발의 총성과 그리고 7연발 권총의 나머지 탄실을 다 비운 것을 설명하는 게 사족으로 느껴진 것일까. 이토의 죽음, 우리의 시각이 너무 원수의 죽음에만 얽매여 있는 건 아니었는지.
무대미술의 진화, 극을 떠받다 <영웅>의 또 하나의 영웅은 무대미술이다. 역동적이면서 짜임새 있고 웅장하면서 색채미가 풍성한 비주얼. 한정된 공간을 파괴하면서 배우의 동선을 평면에서 공간으로 이동시키는 놀라운 배경의 변화는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수평보다는 고저의 연출을 통해 일제하 계급적 이데올로기와 지배, 피지배 계층, 권력의 유무를 표현한 무대는 색채까지 적절히 덧입힘으로써 세밀하게 극을 표현했다.
특히 일제는 붉은색, 러시아를 유리방황하는 조선 청년들의 삶은 차고 건조한 회색조,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의 쇠잔한 푸름, 그리고 신앙을 향한 부르짖음에는 눈부신 밝은 빛. 조명과 무대가 제대로 훈련된 군대의 열병분열처럼 한 치 틀림없이 맞아 떨어졌다. <영웅>이 호평을 받는 이유엔 무대 미술이 한 축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