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수능란한 '문자질'이 반갑지 않은 이유

휴대전화 문자시대의 명(明)과 암(暗)

등록 2009.11.02 14:19수정 2009.11.02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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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거주하는 필자가 학회 참석이나 학교일로 한국을 방문할 때면, 늘 맨 먼저 하는 일은 휴대전화를 임대하는 일이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통신회사에서 운영하는 휴대전화 임대부스에서 휴대전화를 빌리는 일이 이제 한국 방문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이 되어 버렸다. 미국에서도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한국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것은 또다른 세계를 경험케 한다. 그중 한글로 문자를 보내는 일은 이미 기성세대로 접어든 필자에게는 여간 어렵고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후배가 여러 차례 가르쳐 주었음에도 아직까지 혼자서 한글로 문자를 보내는 일은 쉽지 않다. 문자를 보낼 일이 생길 때면 여적 그 후배의 도움을 받아서 문자를 보내는 형편이다. 거의 눈에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능수능란하게 '문자질'(?)을 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혼자 문자 보내기조차 힘겨운 필자는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진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되뇌곤 한다. '아 부럽다~~.'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급속히 확산돼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됐다. 미국에서도 최근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즉각적이고 언제든지 연락이 가능하다는 장점으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앞으로도 이용률이 높아질 전망이다.

 

휴대전화 문자 메지지의 활성화는 언제 어디서나 개인 간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해 가족, 친구, 직장 동료들과 친밀도를 높여주고, 위급상항에서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영향도 있지만 부정적인 영향도 크다. 먼저 휴대전화를 이용한 '문자질'은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계속된다. 그곳이 어느 장소든, 어떤 모임이든 관계없이 이루어진다. 학교 강의실도 그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필자가 강의하고 있는 강의실에서도 학생들의 문자질이 이어진다. 물론 일부 학생들의 경우다. 미국의 강의실이 이런 상황이라면, 문자 메시지 사용이 더욱 활발한 한국 학생들의 경우는 더욱 심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강의시간에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 학생들이 과연 공부는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문자를 주고받는 동안 강의 내용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지고, 학습 효과 역시 떨어질 게 뻔하다. 1년에 1천만 원이라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 듣는 강의 시간에는 휴대전화를 잠시 꺼 두고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활성화가 가져온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는 학생들의 올바른 글쓰기와 언어 사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문자 메시지를 작성할 때 좀 더 이해하기 편하고, 간편하게 보내기 위해서 단어를 축약하거나 변형해서 쓰거나, 아니면 자기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특수 기호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습관은 올바른 영어 문법과 철자 사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대학들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많이 사용하는 환경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대학에 들어와 과제물을 작성할 때 문법과 철자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각 대학마다 문법과 철자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제물 제출 전에 글쓰기를 도와주는 '라이팅 센터(writing center)'를 운영한다. 특히, 올바른 글쓰기와 말하기가 중요한 요소가 되는 필자가 가르치고 있는 저널리즘과 매스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의 경우, 정규 과목 이외에 따로 GSP라는 과정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GSP는 문법(Grammar)과 철자(Spelling) 글쓰기 부호(Punctuation)를 가리키는 말로 제대로 된 글쓰기 능력을 향상하는 과목을 수강하고 이수 하도록 한 것이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활성화가 가져온 씁쓸한 단면이다.

 

어쨌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는 이제 많은 사람들의 생활에 피할 수 없는 일부가 되어 버렸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좀더 생활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필요한 곳에서는 잠시 꺼두는 센스, 문법에 맞는 표현을 사용하려는 노력은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의 부정적인 면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작은 실천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최진봉 기자는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 기사는 엠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11.02 14:19ⓒ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최진봉 기자는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스쿨 교수로 재직중 입니다. 이 기사는 엠톡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 #문자 메세지 #이모티콘 #줄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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