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언론관련법' 국회 표결의 정당성을 가리는 권한쟁의심판 청구 사건에 대한 선고를 하기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유성호
이 논리가 얼마나 끔찍한지는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명확해진다. 헌재의 논리대로라면 1905년의 을사늑약도 절차상 위법하나 헌법적 시각에서 유효한 '조약'이다. 고종황제 이하 온 나라 백성들이 무효라고 주장했던 것은 모두 헛짓에 지나지 않았다.
5년 뒤의 한일병합도 마찬가지다. 총칼로 위협을 했든 말든, 그 과정에 권한 침해가 분명히 있었고 그것은 위법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립된 한일병합은 법적으로 유효하다! 나는 오늘 헌재 결정을 보면서 우리가 더 이상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문제를 제기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국사교과서를 다시 써야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일단 어떻게 해서라도 목표만 달성하면 법적으로 다 유효한 것이니 과정에서 귀찮거나 걸리적거리는 절차 따위는 생각도 하지 말아라, 라고 가르쳐야 하는 게 아닌가.
법조계에 그 어떤 고상한 법논리가 있어서 헌재가 이런 결정을 내렸는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보통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결과가 나온다면 아무리 정교하고 고상한 논리라 하더라도 한낱 먹물들의 말장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미디어법의 유효성 여부를 판단할 때 상당수의 재판관이 판단을 유보했다. 헌재는 주어진 헌법의 테두리에서 법적 판단을 내리는 기관이니까 그 테두리를 벗어난 대상에 대해서는 심사를 할 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미디어법은 그런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헌법체계를 완전히 벗어나거나 초월적인 법이 아니다.
재판관의 판단 유보는 '직무유기'대한민국 헌법은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임을 선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민주공화국에서는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생명과도 같다. 그리고 그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이유는 권력의 주체인 국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협의하고 '합의'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기 위함이다.
민주주의가 쉽지 않은 것은 이처럼 대립하는 의견들 속에서 최선의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헌재 재판관들이 위법하다고 판시한 절차상의 문제들은 한마디로 말해 "좀 수고롭더라도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자기 의견을 펼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과 "그렇게 합의를 거치는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것이 곧 민주적인 의사 처리 과정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최소한의 절차적 정당성(방송법의 경우 일사부재의까지 위반했다)이 지켜지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 자체를 일부 재판관은 판단할 수 없다고 한 모양이다.
재판관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했으니 지금으로서는 그분들의 양심을 믿을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양심이 혹시 헌법재판관으로서 직무유기는 아닌지도 한 번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명확한 논리도 없이 판단불가만 남발한다면 헌법재판소의 존재이유는 그만큼 더 작아질 수밖에 없다.
야당 의원들이여 배지부터 던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