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안 가고 공부하는 장애인의 마음

등록 2009.10.29 14:43수정 2009.10.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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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는 것이 미안할 때가 있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주위의 도움을 받을 때, 도움을 주는 분들에게 참으로 미안하다. 장애인이 아니면 이런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될 텐데, 수고를 끼치지 않아도 될 텐데 하는 마음에서다.

 

또 나라에 미안할 때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 중 남성이면 다 지는 병역 의무를 이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질이 부족해 국방의 의무도 수행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1970년대 중반 군 입대를 위한 징병검사를 받았다. 신체적 장애로 징집 면제를 받은 나는 징병 담당자에게 떼를 썼던 적이 있다.

 

총칼을 들고 적과 맞서지는 못할지라도 행정병으로는 복무할 수 있으니 군대 가게 해 달라고 매달렸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 일이지만 당시 나의 심정은 절절했다. 온전한 대한민국 국민이 되고 싶었고 어떤 방법으로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싶었다. 장애인의 군 생활이 상상 속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발상을 조금만 전환하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고 생각한다.

 

군대는 사회의 축소판 성격을 띠고 있다. 다양한 젊은이들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지역적 계급적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함께 생활하고 있는 곳이 군대다. 생각을 조금만 확대해 보자. 비장애인이라는 공통성 속에는 많은 상이성이 존재한다. 그것은 장애와 비장애보다 더 큰 차이일 수 있다.

 

군대는 전시를 위해 필요 하지만, 지금은 냉전시대처럼 전쟁이 쉬 일어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전쟁은 공멸을 의미하는 어리석은 짓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국의 군대는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의 의의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의 군 입대를 상상의 산물로서만이 아니라 현실 정책에 반영해볼 소지가 충분히 있겠다.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군대, 그 다양함 속에 장애인도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유별난 사람의 단상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일일까? 28일,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나온 병무청장이 장애인은 군대 안 가는 기간 동안 공부를 하기 때문에 군 가산제를 도입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군 생활에 단련된 사람의 경직된 사고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군대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런 식으로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국방의 의무 기간과 공부하는 기간을 등치시키는 것도 우습거니와 그 발언 속에 장애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 더 문제다. 병역 비리를 없애기 위해 군 가산점 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은 나무를 보고 숲은 보지 않으려는 강자 논리에 다름 아니다. 장애인은 많은 영역의 경쟁에서 소외받고 있다. 비장애인의 군 복무기간과 동일한 기간을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원초적 삶의 질의 향상을 바라고 있다.

 

이 정부 들어 장애인 복지 정책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있다. 출발부터 경쟁에 뒤질 수밖에 없는 장애인들에게 "장애인 군대 안 가고, 3년 공부하지 않나?" 식의 조롱조 발언은 장애인들의 마음에 못을 박는 것이다. 장애인 경시 풍조에 동승해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이 정부 관료로 있는 이상, 국가의 장래가 밝지 못하다고 나는 감히 단언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원하는 경증 장애인들에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는 길을 연구해서 정책으로 입안해보라는 것과 기본권적 삶도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장애인들에게 최소한의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복지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더 급한 일임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 관료는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형편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장애인을 미안하게 만드는 관료가 없었으면 좋겠다. 그 미안함이 분노로 바뀔 때, 정부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2009.10.29 14:43 ⓒ 2009 OhmyNews
#장애인 #군 가산점 제도 #병무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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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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