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 금난새씨.
윤성효
지휘자 금난새(62)씨가 지휘봉 대신에 마이크를 잡고 젊은 대학생들에게 '벤처 정신'을 오케스트라 연주하듯 들려주었다. 28일 오전 경남 창원대 인문과학연구소 초청으로 "하모니 리더십-예술경영의 벤처 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했다.
청중에 대해 먼저 이야기했다. "2년 뒤 대구에서 세계육상대회가 열리는데, 기록을 재야할 때는 관중들이 조용히 해야 한다. 그런데 마치 축구경기 보듯 하면 안 된다. 주최측은 청중문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지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음악은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도 있어야 하고 청중도 있어야 한다"면서 "특별한 연주를 할 때는 먼저 모든 청중들이 일어나게 하고, 옆이나 앞 뒤 사람들과 악수하는 등 인사를 나누도록 한다. 음악만 듣고 가는 게 아니다. 음악은 그런 것과 다 연결되어 있다"고 말했다.
"나는 돈키호테형이다"고 한 그는 "어릴 때 부모님이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친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약간 반항적인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친구는 사람만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한 그는 미국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 때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말은 "국가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인지를 걱정하지 말고 우리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였다.
그는 "비지니스 하는 사람은 '노(No)'라고 하면 안된다는 말이 있다"면서 "뭐든지 안된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울예고를 나와 대학에 들어갈 무렵 그는 지휘를 배우고 싶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휘를 가르치는 학과와 지도자도 없었다는 것. 그래서 대학을 작곡과에 들어갔다. "우리나라는 학위가 없으니 '돌파리'라고 한다"고 한 그는 지휘를 배우기 위해 독일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라벤슈타인 교수를 만난 일화다.
"대학에서 소개를 받고 전화를 걸어 연결되어 만났다. 다음 날 라벤슈타인 앞에서 피아노를 치고, 지휘도 선보였다. 그때 나이 27살이었는데, 그는 늦었다며 지금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입학시험을 쳤는데, 10개 과목 중에 5개만 점수가 괜찮았고 나머지는 미달이었다.""불합격 통지를 받고 힘이 빠져 있었다. 그랬더니 라벤슈타인 교수는 '지금은 너를 기억할 사람은 없다. 다음 학기에 다시 시험을 보면 된다. 늦었으니까 내 수업에 청강생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했다. 청강을 하고, 미달되었던 5과목이 다음 학기 시험에 통과되어 다닐 수 있었다."
금난새씨는 "우리 같으면 다음 학기에도 10과목 모두 시험을 다시 쳐야 하는 것과 달랐다"면서 "사람과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수준이 되어 충족되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화 한 통화에 '이상한 나라'에서 온 젊은이한테 기회를 주는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면서 "우리나라는 그런 친절을 베풀고 있나. 이후 저는 공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들어와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고 하면 한 번도 거절한 적이 없다. 라빈슈타인 교수한테 받은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연주회 일화1977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국제 지휘 콩쿨'에 출전해 4위에 입상한 그는 "추천서를 받아 런던이나 뉴욕으로 가고 싶은 생각에 심사위원을 찾아갔더니, 한국도 발전할 나라로 보이고 그러면 할 일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들으면서 앞에서는 웃었지만 기분은 씁쓸했다"고 말했다.
그는 "콩쿠르 4위 입상을 하니 '돌파리'라는 말을 듣지 않게 되어서 그런지, 서울시립교향악단과 국립교향악단에서 초대했다"며 "국립교향악단 지휘를 맡겠다고 했더니 처음에는 부모님들이 반대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KBS교향악단 지휘를 맡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연주했던 일화와 청소년음악회 연주회 일화를 비교해서 소개했다.
"KBS 사장부터 관심이 많았고, 단원들도 연주를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연습도 열심히 했다. 그 때는 부드럽지 않았던 시대니까 그랬다. 단원들도 연습 시간만 끝나면 없어지는데 그 때는 자리를 뜨지도 않고 연습했다. 장관과 대사들이 모인 데서 연주를 했는데, 대통령도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 그 다음에 청소년음악회가 있어 연주를 했는데, 단원들은 연습을 대충 하더라. 똑 같은 연주회인데 청와대에서 할 때 갖는 애정이 100이라면 그 때는 50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