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건축 현장엔 일자리 걱정 없어요

흙, 돌, 나무와 뒹구는 생태건축가 4명을 소개합니다

등록 2009.10.28 14:15수정 2009.10.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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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29일부터 31일까지 동국대에서 동국대총학생회,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녹색일자리한마당추진위원회 주최로 '2009녹색일자리한마당' 행사가 열린다. 청년실업 문제가 시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 버린 오늘날, 대안의 새로운 가치로 떠오르고 있는 녹색일자리가 무엇이고 과연 녹색일자리는 어디에 있는지 4차례에 걸쳐 글을 싣는다. [편집자말]
 생태건축 다큐작가 함승호, 자칭 생태건축 정보통 김성원, 해남에서 온 조각가 이세일, 건축여행가 홍인호.
생태건축 다큐작가 함승호, 자칭 생태건축 정보통 김성원, 해남에서 온 조각가 이세일, 건축여행가 홍인호. 김성원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풀들의 전략이 저마다 다르듯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풀들과 같습니다. 실업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줄 해답은 없습니다. 결국은 개개인마다 일자리를 찾는 방법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생태건축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하는 것이 제가 녹색 일자리 대해 말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자신의 전략으로 삼거나 자신만의 전략을 만드는 데 응용하는 것은 각자의 몫입니다.


집짓는 건축여행가 홍인호

 홍인호 건축여행가.
홍인호 건축여행가. 김성원

홍인호씨는 사랑채를 지으면서 만난 건축여행가입니다. 많은 이들이 '건축여행가'라 하면 '전 세계 곳곳의 멋진 건축물을 찾아 여행하는 고급의 미적 취미를 갖고 있는 부유한 기행가'를 상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홍인호씨는 그런 여행자가 아닙니다. 그는 5년을 목표로 1년 전부터 다양한 생태건축 현장을 찾아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직접 일을 하면서 새로운 건축방법을 배우고 돈도 벌고 있습니다.

그는 건축 여행을 통해 '흙부대 건축', '볏짚단 건축', '짚버무리 건축', '장작목(일명 목천공법) 건축', '경량목구조' 등 다양한 건축 방법을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의 다음 여행지는 김석균 대표(흙건축연구회 살림)의 '담틀건축' 현장입니다. '귀틀집짓기'와 로그 하우스(Log House, 서양식 통나무 건축)도 그가 배우고 싶어 하는 건축방법입니다.

그가 단순히 돈을 벌고자 건축현장을 떠도는 건 아닙니다. 새로운 건축방법을 익힐 수 있는 곳만 찾아가서 일을 합니다. 품삯이 많거나 적거나 품삯을 받든지 못 받든지 상관없이 배우고 익힐 수 있는 현장을 찾아갑니다.

어느 현장에서나 마치 자신의 집을 짓듯이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그를 부르는 곳들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는 건축여행길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그들 중에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고 형동생이 됩니다. '친구가 한명 생기면 길이 하나 새로 만들어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여행길은 그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4년 후 그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그의 말대로 건축여행에서 배운 건축술로 오대산 산자락에서 직접 자신의 술도가를 짓고 있을까요?

홍인호씨는 홍대건축과 출신인 '건축공방 무(無)'의 이일우 소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일우 소장은 대학 때 강의를 듣기보다는 한옥 목수를 따라 현장을 쫓아다니던 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지금은 실력을 인정받는 생태건축가로 자신의 건축공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홍인호씨도 남다른 실력을 가진 건축가로 변신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은 답답한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고만 있을 때 그는 목표를 가진 여행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을 목수와 지역건축가 조윤석

 조윤석 건축가
조윤석 건축가김성원

50여 년 전만 해도 시골집들은 대개 마을 목수와 청년들이 뒷산의 나무와 돌, 흙을 가져다 지었다고 합니다. '집짓기를 나그네에게 맡기랴'는 속담이 말해주듯 예전엔 집짓기를 아무에게나 맡기지 않았습니다. 집주인의 살림살이와 살림 습관 등을 잘 알 뿐 아니라 그 마을의 지형과 기후, 건축 재료로 쓸 뒷산의 흙과 나무 특성까지 잘 알고 있는 마을 목수에게 집짓기를 맡겼습니다.

그런 마을 목수 같은 지역 건축가가 되겠노라며 남도 끝자락 전남 장흥 정장마을에 집터까지 사두고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 건축가가 있습니다. 조윤석씨는 건축가 집안에서 자라고 건축을 전공한 그 자신의 말대로 '뼈 속까지 건축가'인 사람입니다.

그는 '짬뽕', '자장면'과 같은 기막힌 노래를 부르던 황신혜 밴드의 베이스 주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건축과를 나와도 거대 설계회사에 입사한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소규모 설계사무소나 건축사무소에서 아주 적은 임금을 받고 일한다고 합니다. 돈 버는 건축가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건축가들 사이에선 '건축가가 자기 집을 지으면 성공이다'라고 말한답니다.

이제 그는 새로 봄이 오면 자신이 살 집을 짓게 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짓는 집이 아닙니다. 마을 목수가 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자신의 집을 지으려는 것입니다. 그는 설계와 시공을 함께하는 지역건축가가 되려합니다.

그가 한 마을 이웃으로 들어간다니, 기대가 됩니다. 현재 우리나라 생태건축은 자연건축 재료에만 집착하거나 겨우 다양한 생태 건축공법을 적용해보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앞으로 생태건축 분야는 미적인 면이나 공간의 구성 등 채워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지역의 건축자재를 이용하고 지역의 문화와 기후에 맞는 건축양식을 구현했던 마을 목수 같은 지역 건축가가 필요해지는 시대가 다시 오고 있습니다. 에너지위기와 생태적 건축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토착건축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건축협동조합을 꿈꾸는 커뮤니티 건축가 박성수

 박성수씨(왼쪽 4번째)와 경상공방 회원들
박성수씨(왼쪽 4번째)와 경상공방 회원들김성원

부산경상공방은 한국스트로베일건축연구회 카페의 부산경상지역 회원들이 금년 초에 자발적으로 만든 건축공방입니다. 공방을 만드는데 공동 출자한 회원이 5명이고 참가하고 있는 회원들이 30여 명이 됩니다. 벌써 회원이 건축주인 집을 두 채나 볏짚단과 흙을 이용해서 지었습니다.

회원들 중에는 건축 시공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건축을 주도해갑니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품삯을 받거나 건축비를 받습니다. 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회원들은 일손이 많이 가는 볏짚단 쌓기와 흙미장을 돕습니다. 부산경상공방이 집을 지으면 교육과 더불어 품앗이 현장이 됩니다.

이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박성수씨는 부산경상공방의 현장은 서로가 신뢰하며 일을 맡기고 일을 하기 때문에 '즐겁고 재미난 집짓기'가 된다고 합니다. 앞으로 건축주인 회원이나 일하고 품삯을 받은 회원이 조금씩 기금을 모아 독거노인이나 가난한 가정의 집짓기를 도울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시공이 없을 때 부산경상공방은 건축전문가들과 함께 건축과 목공에 대한 회원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터넷과 지역 커뮤니티에 기반을 둔 건축활동은 생태건축 카페들을 중심으로 점점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박성수씨는 건축협동조합을 꿈꾸고 있습니다. 건축협동조합은 지역사회의 건축주와 시공자, 전문가와 초보자가 공동 출자자이자 회원인데요. 이들은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함께 집을 짓고 그 이익을 지역사회와 나눕니다. 일종의 생활협동조합인 것이지요.

자칭 생태건축 정보뱅크 김성원

쑥스럽지만 제 이야기도 해야겠네요. 저는 다니던 일자리에서 해직되고 2007년 전남 장흥으로 귀농한 후 국내 최초로 흙부대집을 지었습니다. 집을 짓고 난 직후부터 흙부대건축 경험과 지식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모두 공개하고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이란 책까지 쓰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귀농운동본부와 함께 귀농자들을 위한 건축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틈틈이 경량목구조, 담틀, 볏짚단건축, 짚버무리, 종이시멘트 건축, 대나무 건축 등 다양한 생태건축에 관련된 정보와 자료들을 수집하고 정리해서 인터넷 카페와 그 밖의 지면을 통해 그 건축방법을 알리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딱히 큰돈을 버는 일도 아닙니다. 그러나 재미있고 좋아서 건축을 하는 것이고, 생태건축은 대중 모두가 알아야 할 생활기술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어느새 변변찮은 제 농사일 외에 건축정보를 가공하고 정리해서 알리고 교육하는 일이 제 일거리가 되었습니다. 직장에 다닐 때와 달리 제 뜻대로 즐겁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 이 시간이 행복합니다. 

생태건축 현장엔 일자리 걱정이 없습니다. 대부분 생태건축 현장이 농촌이기 때문에 젊은 일손이 항상 부족합니다. 단순히 흙집을 넘어, 다양한 생태건축이 건축공법으로서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초창기이기 때문에 이 분야에 경험과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적습니다. 사람들이 자연재료에만 집착하던 재료주의와 건축공법 자체에 치중하던 단계를 넘어 공간 구성과 미적 기획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김성원 기자는 흙부대건축네트워크 매니저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성원 기자는 흙부대건축네트워크 매니저입니다.
#생태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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