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은 마음을 먼저 다스려야 한다고?
김진수
어린 시절 내가 아프면 할머니께서는 짚불을 태워 그 연기로 나의 몸을 휘감는 의식을 행했습니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할머니만의 주문과 기원을 담아 짚불을 태웠습니다. 나는 그저 시시하고 겁나고 매캐한 연기가 싫어 몸을 빼고 도망갈 기회만 엿보았지만 할머니는 그게 아니었던가 봅니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할머니의 긴 휘파람 소리입니다.
이렇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민간신앙에 길들어졌고, 성인이 된 지금도 민간신앙의 묘한 기운에 젖어 있습니다. 옛동네 입구의 오래된 장승을 보면 생명체의 신비한 힘을 습관적으로 느낍니다. 어릴 때 서낭당 고갯마루에 있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보고 지나칠 때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껴 혹시 나의 뒤통수에서 불가사의한 능력을 발휘하지는 않는지 자꾸 뒤돌아 본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내 의식 속에 살아 있는 민간 신앙의 신비한 장승은 어느덧 사라지고 희화화되고 장난감 같은 장승을 봅니다. 한편으로는 과학과 예술에 밀려 민간신앙이 퇴색해 가는 느낌마저 들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많은 기원 중에서 다산(多産)의 상징으로 남근(男根)상 장승도 만들어 숭상하기도 했겠죠. 옛날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그 비극이 오죽했겠습니까? 따라서 다산의 비원이 컸던 만큼 굳건한 남성의 장승은 여러 모로 옛사람들의 의식 속에 크게 자리 잡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 장승은 징그럽게도 많은 수의 남성이었습니다. 굳건한 남근을 통해서 요즘 사회문화적으로나 생물학적으로 점점 위축되고, 왜소해져 가는 남성상의 회복을 기원하시나요? 이래저래 서글퍼지는 남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