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산책길에서 만난 가을의 맛
김찬순
환한 달덩이 같이 박이 굴러다니는 지붕 위에 박을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 많이 난다. 어머니는 어릴 적 나의 주치의기도 하지만, 내 친구들이 음식을 잘못 먹어 갑자기 배가 아플 때는 따뜻한 보리차를 마시게 하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대고 엎드려 있으라고 처방해주시곤 했는데, 정말 그렇게 하면 나았던 것이다. 특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것은 대나무를 땅에 꽂고 위부분을 여러 갈래로 쪼개, 그 위에 정화수를 담은 바가지를 올려 놓고 많이 비셨다.
이렇게 하면, 박은 둥글고 씨가 많아 생명력과 생산성과 장수를 뜻해서, 자손이 번창한다고 믿으셨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아들 딸에서 생긴, 손자 손녀, 증손녀 증손자 합하면 서른 명이 넘는 대가족이다.
어머니는 박으로 만든 바가지로 웬만한 질병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해서, 마을의 질병이 돌때 마루에 엎어 놓고 두 손으로 마루를 문질러 소리를 내거나, 장대 끝에 바가지를 매어두면 병이 사라진다고 믿으셨다. 정말 괴로운 신종플루 때문에, 박 하나 얻어, 어머니처럼 신종플루 질병퇴치를 빌어볼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