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2009년 일본 서점대상,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등록 2009.10.18 15:06수정 2009.10.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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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겉표지
<고백>겉표지비채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은 근래에 소개된 일본소설 중에서 그 이력이 단연 돋보인다. 2009년 서점대상을 비롯,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과 2009년 오리콘차트 상반기 소설부문 1위를 기록하는 등 그 면면이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독자들의 사랑도 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등장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화제가 됐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이 이렇게 화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고백>은 여러 인물들의 '고백'을 통해 어린아이에 대한 살인사건과 그에 대한 복수를 담고 있는데 그 구성이 치밀하기 이를 데 없다. 고백이 이어질 때마다 앞의 고백을 뒤집어버리는 반전들이 등장하는데 그 수법들은 어느 하나 허튼 것이 없다. 게다가 고백들이 이어지면서 등장하는 사람들의 치밀한 심리묘사도 날카롭기 이를 데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의식까지 담고 있다면 어떨까?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그만큼 생각할 여지도 많은 소설이라는 뜻이다.


<고백>은 여교사 유코의 고백으로 시작한다. 봄방학을 앞둔 어느 날, 유코는 열세 살의 학생들 앞에서 이제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유코의 어린 딸이 학교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를 당했던 터라 다들 그녀의 퇴직 이유를 짐작한다. 그런데 유코의 고백은 그들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자신의 딸이 반 아이들 중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고백을 들은 아이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처음에는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한다. 하지만 유코의 말은 사실이었다. 범인들이 이미 자백을 했다고 하니 부정할 수 없다. 이제 아이들은 감옥에 가야 하는 걸까? 유코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대신에 어떤 복수의 장치를 꾸며놓았다고 말한다. 살면서 평생 반성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유코는 떠난다. 살인자들과 아이들만 남겨놓은 채로.

유코에 이어 고백하는 사람은 반 아이들 중 한명인 미즈호다. 그녀는 유코가 범인들을 두고 A와 B라고 명했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다. 미즈호는 반 아이들이 그렇듯 그들을 없는 사람처럼 대한다. 하지만 그런 기분은 오래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은 한 명의 살인자는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학교에 나오는 또 다른 살인자를 용서하지 못한다. 그들은 복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열세 살 아이들의 복수란 어떤 것일까. 미즈호의 눈에 펼쳐진 그것은 잔혹한 것이었다. 어른들이 누군가를 왕따시키는 것만큼 치밀한 것이기도 했다. 미즈호는 유코의 딸이 불쌍하기는 했지만 차마 아이들처럼 행동하지는 못했다. 멀리서 바라볼 뿐인데, 그 때문에 아이들은 미즈호까지 괴롭힌다.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이라는 논리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학교에 나오지 않던 살인자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른다. 자신의 엄마를 칼로 찔러 죽인 것이다. 미즈호는 유코 선생에게 묻는다. 이것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뒤이어 이어지는 고백은 살인자들과 그들의 가족, 그리고 다시 유코 선생의 것들이다. 이것들이 이어지면서 사건은 계속해서 생기고 그 이면에 가려졌던 진실이 드러나면서 반전이 계속되는데 그 솜씨가 제법이다. 미나토 가나에의 트릭과 구성의 정밀함은 웬만한 사람은 당해낼 수 없을 만큼 허를 찌른다.


하지만 <고백>의 소설적인 힘은 그러한 장치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고백들 사이에 묻어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묘사에서 나오고 있다. 고백을 하는 동안, 그들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된다.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믿는 그들은 내 편이 아닌 다른 이를 단죄하려 하고 제재하려 한다.

생각해보면 고백은 그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합리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고백들이 서로 맞물려 있지만 서로 상반된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소설은 재밌어진다. 인간의 이기심을 극단적으로, 날카롭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치밀한 구성과 인간 심리에 대한 날카로운 묘사가 담긴 <고백>, 소설을 수식하는 화려한 말들이 결코 과하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하게 만든다.

고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비채, 2018


#미나토 가나에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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