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윤성효
먼저 최광기씨가 임헌영 소장한테 물었다. "70년대는 어떠했느냐"고. 임 소장은 "70년대 징역 두 번 산 것 밖에 기억이 안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때가 고전적인 독재였다면 지금은 기술적인 독재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0년대 상황을 구체적으로 묻자 임 소장은 "너무나 기억이 생생하다"며 "요즘 젊은이들은 모를 것이다. 상상도 안될 것이다. 머리카락이 길다고 잡아가고 했는데 말이다"고 말했다.
김재규 전 관장도 70년대를 더듬으며 먼저 "부끄럽다"고 했다. "저보다 훨씬 옥고를 치르고 열심히 한 분들도 계신데, 이런 말 해서 민망하다"고. 그는 "지금 젊은이들은 70년대라면 상상을 못할 것"이라며 "정말 우리한테 이런 사회가 있어서는 안 될, 잔인한 억압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부마항쟁의 지원 조직의 하나였던 양서협동조합에 대해, 김 전 관장은 "1978년 4월 학생 등에게 양서를 보급하고 세력을 결집하자고 해서 만들어졌다"면서 "이후 비슷한 형태로 대구, 광주, 마산으로 확대되었는데 부산이 모태였다. 이후 해산되기는 했지만 한때 회원은 600명이나 되었다"고 말했다.
최광기씨는 임 소장한테 당시 출판문화에 대해 물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출판계는 엉터리였다. 참고서 위주로 책을 내서 먹고 살았고, 일제 잔재가 남아 있었다.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기자들이 출판을 많이 했는데, 우리나라의 출판문화를 20년이 앞당겼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출판사에서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다. 양서협동조합 같은 조직이 서울에도 생겨났는데, 당시 부산에 내려와 많은 인사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김광일 변호사도 기억이 난다"는 대답이었다.
사회자는 두 사람은 언제 처음 만났느냐는 질문을 했다. "교도소에서 처음 만났다"는 대답이 나왔다. 대구교도소에서 두 사람은 처음 만났다. 임 소장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1983년까지 투옥되어 있었고, 김 전 소장은 1981년 부림사건(전두환정권 반대투쟁)으로 투옥되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