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만든 작품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춘 장인. 리장 위쉐이자이(玉水寨)에 있는 동파신조는 춘 장인의 대표작 중 하나다.
모종혁
주민의 8~9할 넘게 금속공예업에 종사하지만, 신화촌에는 변변한 기술학교가 단 한 곳도 없다. 장인이 되려면 오직 가업을 잇거나 마을 이웃어른을 스승으로 모셔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
신화촌 각 가정마다 전승되는 기술도 다르다. 어느 집은 금 세공을, 어느 집은 은 세공을, 어느 집은 동기 가공을, 어느 집은 철기 가공을 전문적으로 한다. 개인장식품만 만드는 집이 있는가 하면, 일용생활용품만 만들고, 종교 제기와 법기를 전문 제작하는 집이 따로 있다.
노련한 장인이 되는 길 또한 험난하다. 신화촌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서 망치를 선물 받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14~16세가 되면 스승을 모셔서 찾아 수련의 길에 들어선다. 수련 기간은 짧게는 5~6년, 길게는 10년 이상 걸린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에는 스승이 제자를 데리고 수련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신화촌에서 가장 유명한 명장인 춘파뱌오(寸發標)는 혹독한 수련 여행을 경험했다.
춘 장인은 12살 때부터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고 금속 공예기술을 익혔다. 16살부터는 아버지와 함께 윈난성 각지를 돌아다녔다. 윈난 내 다양한 소수민족의 공예술을 섭렵하고 견문을 넓혔다.
그들은 뒤이어 티베트, 구이저우, 광시, 간쑤(甘肅), 닝샤(寧夏) 등지를 다녔다. 수련 여행 과정에서 조상 대대로 내려온 바이족 공예술과 타민족 및 현대 가공기술을 융합시키는 작업도 병행했다.
1987년 라싸에 정착한 춘 장인은 티베트자치주 정부의 요청으로 포탈라궁 내 금·동 제기와 법기 제작을 주도했다. 문혁 중 파괴된 티베트 내 수많은 라마사원의 복원작업에서 다시 만들어진 수많은 금속 제품은 춘 장인이 제작한 것이다.
춘 장인은 "1996년 고향으로 되돌아올 때까지 티베트를 방문하는 중국 및 외국 지도자에게 주는 금·은기 선물을 다 만들었다"면서 "라싸에서 지낸 10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