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우 님 만화 삶이 담긴 책 겉그림.
최종규
저는 2004년부터 신문읽기를 끊었기에, 이때부터 오늘날까지 이분 만화며 다른 분 만화이며 어떻게 펼쳐졌는지를 잘 모릅니다. 2004년 겨울에 <한겨레> '미주알'을 그리던 김을호 님이 붓을 꺾은 뒤로는 <한겨레>마저 볼 마음이 들지 않기도 했습니다. 다만, 둘레에서 들려오는 이야기와 지난날 '나대로 선생'이며 '왈순 아지매'며 '야로씨'며가 어떤 눈높이에서 어떤 목소리로 우리 삶과 사람을 읽어내어 그림으로 담아냈는가를 돌아볼 때에는 여러모로 슬프고 안타깝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듭니다.
시사만화는 틀림없이 '세상일'을 다루는 만화입니다. 어느 만화가 안 그러겠습니까마는, 신문에 싣는 시사만화는 더더욱 '풍자'를 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도록 그립니다. 한자말 '풍자(諷刺)' 뜻을 살피면, "(1) 남의 결점을 다른 것에 빗대어 비웃으면서 폭로하고 공격함. (2) 문학 작품 따위에서, 현실의 부정적 현상이나 모순 따위를 빗대어 비웃으면서 씀"인데, 말풀이가 처음부터 이러했는지 모르겠으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풍자'는 세상 잘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이야기에 빗대어 까밝히면서 속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리도록 하는 말마디를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비웃다' 말풀이는 "어떤 사람이 보여주는 몸짓을 터무니없거나 어처구니없다고 여겨 얕잡거나 업신여기다"이거든요. 우리가 풍자를 한다고 할 때에는 맞은편을 얕잡거나 업신여기는 매무새가 아니라, 잘잘못을 밝히면서도 슬쩍슬쩍 눙치거나 꾸지라다가도 따뜻하게 감싸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하거든요.
.. 매일 검열과의 싸움이었다. 어떤 날은 만화를 하루에 일곱 번 그린 날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없는 시절이다. 그러나 검열을 뚫고 할 말은 해야 했다 … (이회창 총재가 묻기를) "매일 매일 시사만화를 그려야 하는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면 시사만화 소재를 어떻게 찾으십니까?" 평이한 질문이었으나 다들 뭐라고 답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일순 분위기가 조용해졌다. 내가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졌다.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 … 그(이회창 총재)를 미리 만나 봤더라면 실제로 둥근 안경을 세모로 그리면서까지 날카로운 캐리커처로 묘사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전 총재는 정치적인 이미지 차원에서 손해를 많이 본 정치인이다 .. (75, 116∼117쪽)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인천으로 전철을 타고 돌아가는 엊저녁과 다시 일을 하러 서울로 길을 나서는 오늘 아침에 이홍우 님 다섯 번째 책 《나대로 간다》를 읽습니다. 앞서 나온 《미스 앵두》는 아직 찾아내지 못해 읽지 못했으나 《오리발》과 《문민아 너 어디로 가니》는 일찌감치 읽었습니다. 이 만화 두 가지를 읽을 때에는 나라안 10대 중앙일간지를 날마다 들여다보면서 기사와 만평을 샅샅이 견주어 살피고 헤아리는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무렵에 '나대로 선생'을 들여다보던 저는, '이분이 스스로는 풍자를 하는 시사만화를 그린다고 말씀하실는지는 모르나, 아무래도 풍자가 아닌 비아냥에 지나지 않는 총질로 사람들 가슴에 구멍을 뚫는 짓'을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고가 있기에, 이홍우 님으로서는 보수 쪽에 한 발을 디디고 있었다 말할는지 모르지만, 보수이든 수구이든 오른쪽이든, 또 진보이든 개혁이든 왼쪽이든, 지켜야 할 대목은 지켜야 합니다. 사람된 매무새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갈고닦아야 할 길은 갈고닦아야 합니다. 섬겨야 할 어른은 섬기고, 받들어야 할 넋은 받들며, 고개숙여야 할 곳에서는 고개숙여야 합니다.
꼭 '조중동'이라고 묶는 세 신문사라서가 아니라, 세 신문사에 글을 쓰고 사진을 담고 그림을 그려 넣는 분들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 삶터에서 우리가 나아갈 길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고, 우리 삶자리에서 우리가 아름답게 여기며 붙잡아야 할 길은 어디에 있다고 헤아리시는지 궁금하며, 우리 삶자락을 어떤 이웃하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 마음밭을 어떻게 일구어야 기쁘고 반갑다고 보는지 궁금합니다.
'검열을 뚫고 할 말'은 무엇이었으며, 검열을 없애려고 보여준 움직임은 무엇이었고, 검열에 스러지는 이웃과 동무를 어느 만큼 느끼는 삶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970년대 <동아일보>하고 1980년대 <동아일보>랑 1990∼2000년대 <동아일보>는 서로 얼마나 닮거나 다를까요. 만화쟁이 이홍우 님이 스물일곱 해라는 기나긴 동안 <동아일보>에서 보여주고 들려준 '나대로 선생' 말마디와 생각마디는 우리 이웃과 터전을 어느 만큼 비추거나 담아낼 수 있었을까요. 당신은 공천심사부터 떨어졌기에 더 할 말이 없고 아쉬움도 클 텐데, 공천에 붙고 국회의원까지 되었다면, 당신이 걷는 길은 지난날과 또 얼마나 크게 달라졌을까요.
.. 1972년 6월 19일에 실린 그(윤영옥, '까투리 여사')의 만화가 정부 권장으로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한 농민들이 과잉생산과 판매부진으로 애를 먹고 있는 현실을 풍자했는데, 당시 정부가 추진하던 새마을운동을 비판한 것으로 오해받았다. 결국 그는 펜을 놓고 회사를 떠나야 했다. 그의 만화 '까투리 여사' 역시 연재가 중단되었다. 이른바 "서울신문 필화 사건"으로 한동안 지방신문 등에 만화를 그리던 윤 화백은 국립도서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자료를 모아 한국시사만화계의 소중한 자료인 《한국시사만화사》를 펴내기도 했다 .. (217쪽)1986년 3월 24일치에 그린 '나대로 선생' 때문에 하루 동안 끌려가 몇 대 얻어맞고 나왔다는 이야기(78∼79쪽)는 있지만,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움켜쥔 전두환 정권 첫무렵에 어떤 그림과 이야기로 그 어둡던 나날을 그려내고 있었는가를 밝히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이 나라 낮은자리 사람들이 눌리다 눌리다 못해 들고 일어나면서 군사독재 정권이 흔들리던 무렵부터 조금씩 '전두환 비판'을 그리기는 했다지만, 군사독재 정권이 단단하던 무렵에는 '나대로 선생'이 얼마나 '나대로'라고 하는 길을 걸었는지는 239쪽짜리 책에 한 줄조차 실리지 않습니다. 어쩌면, 지난날 대통령 후보로 나왔던 이회창씨 앞에서 "아이디어 안 떠오르면 여당 후보 조지는 게 일이죠"하며 읊던 말마디처럼, 지난 열 해에 걸쳐 집권여당만 신나게 '조지는' 만화를 그리면서, 당신한테 '아무런 아이디어가 안 떠올랐'음을 이 책으로 낱낱이 보여주는 셈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