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몰려 처형된 경제학자 40년만에 한풀이

69년 교수형 당한 권재혁씨... 진실화해위 "가혹행위로 조작"

등록 2009.10.12 12:26수정 2009.10.12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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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전한 1969년 5월28일자 <조선일보>.
'남조선해방전략당' 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항소심 판결을 전한 1969년 5월28일자 <조선일보>. 조선일보 PDF
1969년 간첩 누명을 쓰고 처형된 경제학자가 40년만에 억울함을 풀게 됐다.

12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장 안병욱, 진실화해위)는 1968년 8월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남조선해방전략당(이하 전략당) 사건'과 관련해 "중정이 권재혁 등 13명을 강제 연행하여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통해 반국가단체로 조작했다"며 국가에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를 이루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과 재심 등을 권고했다.

중정은 전략당 사건을 간첩사건으로 발표했지만, 이는 권재혁 등 13명을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로 괴롭혀 허위 진술을 얻어낸 결과라는 게 진실화해위의 설명이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중정은 또 다른 공안사건인 '통일혁명당 사건'과 관련해 관련자 13인을 1968년 7월30일 경부터 강제 연행하여 최장 53일 동안 불법 구금하고, 구타와 잠 안 재우기 등의 고문과 가혹행위를 통해 허위 진술을 강요했다.

특히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리건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권재혁씨는 건국대와 육군사관학교 등에서 경제학을 가르쳤는데, 중정은 그를 반국가단체의 '수괴'로 몰아세웠다.

중정은 권씨에 대해 ▲ 63년8월 이일재씨와 노농계급당을 구성하고 ▲ 65년11월 조총련으로부터 지하당 조직자금을 수수하는 것을 모의하고 ▲ 67년1월 노농군 결성을 모의 하고 ▲ 68년 조직확대회의에서 전략당 총책이 됐다는 혐의를 적용했는데, 진실화해위는 "중정이 지인들 간의 친목모임을 '전략당'이란 명칭과 강령을 가진 반국가단체로 확대 과장하여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남조선해방전략당'이라는 사건의 명칭도 권씨가 1968년 3월경에 쓴 미발표 논문의 제목을 근거로 중정이 임의로 만들어냈다고 한다.


당시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나 자술서 등도 억압적인 상태에서 작성된 것이기 때문에 반국가단체 구성·가입 또는 내란예비음모 등의 범죄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피고인들은 칼 마르크스의 저서 등을 읽고 연구한 사실은 일부 인정했으나 '노농군 결성 모의' 등에 대해서는 한사코 부인했다. 생전의 권씨도 68년 12월12일 공판에서 "지난 3월 일본 도쿄에서 조총련계 교포들과 여러 차례 만난 일은 있으나 (북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사실은 없다"고 간첩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과 법원은 그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지검 공안부는 9일 뒤 서울형사지법 221호법정에서 열린 결심공판에서 "관련 피고인들이 북괴의 최후 발악적인 만행이라든지 북괴가 노리는 남한 내의 지하당 조직책동에 적극적으로 호응, 반국가단체를 구성·활동했기 때문에 북괴 지령하에 양민을 학살하는 북괴공비의 만행이상으로 미치는 영향이 더욱 심각하다"며 권재혁·이일재·이형락·이강복 등 피고인 4명에게 국가안보를 위해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량을 구형했다.

이듬해 1월18일 서울형사지법은 권재혁·이일재 두 피고인에게 사형, 이형낙·이강복 두 피고인에게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밖의 피고인들에게는 징역15년·자격정지 15년에서 징역3년6월 자격정지 3년6월을 각각 선고했다.

당시 판사는 피고인들이 반국가 단체인 남조선 해방전략당을 조직, 70년대의 결정적인 시기에 무장봉기를 하려 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 유죄로 인정했다.

대법원은 69년 9월 23일 권재혁씨에 대해서만 사형선고를 확정했고, 그는 같은 해 11월4일 오후4시 서울 서대문구치소 교수대에서 처형됐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이일재씨는 1988년 8․15 특사로 출옥했다. 10년 형을 받은 이강복씨는 1971년 10월 대전교도소에서 암으로 사망했고, 1978년 8월 만기출소한 이형락씨는 1985년 자살로 불행한 삶을 마감했다.
#권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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