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대권에 도전한 김춘추(유승호 분).
MBC
드라마 <선덕여왕> 덕만공주(이요원 분)가 여왕의 길을 선언하여 온 나라에 충격을 안겨준 데에 뒤이어, 이번에는 김춘추(유승호 분)가 덕만의 경쟁자로 나서는 바람에 다시 한 번 쇼크를 던져주었다. 덕만의 행보에 제동을 걸기 위해 미실(고현정 분)이 화백회의에서 춘추를 부군(왕자 아닌 후계자) 후보로 추천함에 따라, 신라의 후계구도는 이모 대 조카 간의 대결양상을 띠게 되었다.
죽은 어머니인 천명공주(박예진 분)의 자리를 덕만이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이모에 대해 늘 삐딱한 태도를 보이던 춘추는 위와 같이 이모의 정치적 라이벌로까지 나서게 되었다. "제가 왜 신라에 돌아왔을까요?"라고 왕위도전 가능성을 시사하며 이모를 자극하던, 아니 '놀리던' 춘추가 급기야 미실을 이용하여 일을 내고 만 것이다.
하긴 드라마 속 춘추는 그래서 무서운 인물인지도 모른다. 자기 어머니의 자리를 차지한 덕만에 대해 적대적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작 자기 어머니와 아버지를 모두 죽인 미실측에 대해서는 우호적 태도를 보이다 못해 그들을 이용해서 왕위까지 차지하려고 하니 말이다.
지난 6일에 방영된 드라마 <선덕여왕> 제40부 말미에서 위와 같이 춘추가 이모인 덕만의 발목을 잡고 나섬에 따라, 이 드라마에서는 새로운 대립구도가 급속히 떠오르게 되었다. 덕만-미실 구도에 이어 덕만-춘추 구도가 전격 부상한 것이다.
<선덕여왕> 김춘추, 실제도 삐딱했을까<선덕여왕> 제40부가 역사적 실제와 얼마나 근접한가를 살펴보기 위해, 우리는 2가지 방향에서 이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춘추의 성격이 그처럼 삐딱했을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고, 또 하나는 춘추가 이모에 대해 적대감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첫째, 춘추는 과연 삐딱한 성격의 소유자였을까? 부모 없이도 훌륭하게 성장하는 모범적인 청소년들과 달리, 춘추는 자신이 천애의 고아라는 이유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삐딱하게 행동했을까?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춘추의 아버지인 용수는 미실의 계략에 휘말려 전쟁터에서 사망했고 어머니인 천명공주는 미실 측이 잘못 쏜 화살에 맞아 사망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드라마 속의 춘추는 자신의 부모를 모두 죽인 미실 측에 대해 타오르는 적개심을 가져야 마땅하다.
어느 유명한 시를 연상시키듯이, 춘추는 죽은 어버이에 대한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을 안고 숨죽여 흐느끼며 '타는 목마름으로 어버이여 만세'를 외치는 한편, 미실에 대한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을 품고 복수를 꿈꾸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가슴 찌릿하고 절절한 이 시구가 현대 한국인들을 실망시키고도 남을 충분한 이유가 있듯이, 그 시구와 잘 조응되는 드라마 속 춘추의 처지 역시 시청자들을 실망시키고도 남을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춘추의 부모가 모두 다 미실 때문에 사망했다는 드라마 내용은 시청자들을 완전히 '기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행복했던 천명과 용수네 가족<화랑세기> 제13세 풍월주 김용춘 편에 따르면, 덕만이 후계자가 된 후에도 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와 아버지인 용수(진지왕의 아들)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죽음에 임박하여 용수는 동생인 용춘에게 부인과 아들(춘추)을 맡겼다고 <화랑세기>는 전하고 있다.
우리는 춘추가 천명·용수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천명·용춘 사이에서도 꽤 유복하게 성장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만한 근거를 갖고 있다. <화랑세기>에서는 이들의 가정이 상당히 행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춘추의 성격이 삐뚤어질 만한 이유를 사료 속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다.
또 천명공주가 본래 사랑한 대상은 용수가 아니라 용춘이었기 때문에, 천명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남편인 용춘과의 삶이 보다 더 행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용수와 용춘이 번갈아가며 천명과 밤을 함께 보내는 와중에 용수의 아들인 춘추가 태어났기 때문에, 용춘 입장에서는 조카인 춘추를 친자식처럼 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따라서 춘추가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했을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춘추의 생부가 용수인가 용춘인가를 놓고 <삼국사기> <삼국유사> <화랑세기>가 제각각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용수와 용춘이 번갈아가며 천명을 상대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그만큼 용춘이 춘추에게 친아버지처럼 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을 본다면, 춘추가 성장과정에서 삐딱한 성격을 갖게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춘추는 정말로 이모 덕만을 싫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