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점제, 없어도 별 상관없지만...

[반론] 임재성 기자의 '군가산점'으로는 안돼, 제대로 보상하라'에 대한

등록 2009.10.11 16:14수정 2009.10.1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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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박종달 병무청창의 '군가산점제 검토' 발언은 우리 사회의 케케묵은 '군 가산점 논쟁'을 다시금 불러 일으켰다. 1999년 위헌 결정이 난 후 그동안 수면 아래에 가라 앉아 있던 군가산점 문제를, 군필자의 우대 방안으로 다시금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10년 전, 위헌으로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에 놓였던 제도가 다시금 기사 회생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최근에 터진 병역 비리 사건 때문이다. 최근 병무청 관계자들의 심정은 참담할 것이다. 이 나라가 행방불명으로 군대 기피하고, 기관지 이상해서 군대 안 가고, 외국에서 놀다 군대 못 간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겠지만, 그래도 스스로 몸에 칼집을 낼 정도로 병역 기피 실태가 만연할 줄 정말 몰랐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노심초사한 병무청장은 '군가산점제를 부활시키겠다'라고 다소 충격적인 일언(一言)을 사회에 던졌다. 어려운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드라마틱하게 등장한 병무청장의 '군가산점제'. 어깨 탈골 수술을 위해 브로커까지 동원하는 최근의 병역기피 세태에 대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인다. 그것이 환상의 대책인지, 혹은 궁여지책(窮餘之策)인지는 모르겠으나, 안타깝게도 병무청장의 뜻은 이루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군 가산점제' 발언은 의도와는 달리 지루한 논쟁의 시발점이 됐기 때문이다. 무릇 제도란 찬성으로만 의견이 모아져도 채택이 어려운 것인데, 현재 '군가산점제 부활'에 대해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러니 과연 제도 채택이 가당키나 한 일인지 모르겠다.

 

여론은 찬반 양론으로 크게 갈라져 있고 뜻을 모으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기에 흐지부지 끝날 공산이 크다. 대기업도 별 반응이 없다고 한다. 사실 군필자이자, 취업을 앞둔 대학생인 내 입장에서도 '군가산점제'는 뭔가 찜찜한 것이 사실이다. 혜택이 돌아올지 안돌아올지 모르는 몇%의 이득을 위해 군가산점제의 필요성을 논하기는 뭔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혜택이 온다해도 '차별 제도의 수혜자' 같은 말을 감당해 낼 용기도 없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적어도 난 '군 가산점제 없어도 상관없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젊은 예비역들(적어도 내 친구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실질적인 혜택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무리 필요 없고, 모른 척 하려고 해도, 위헌 소지를 없앤 '군가산점제'마저 그저 안된다며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의 일부 이상한 논리(?)는 마음을 씁쓸하게 만든다. 제도가 채택되고 안되고를 떠나, 억지 논리로 생각의 자유 자체를 막는 행태는 몹시 언짢은 일이다.

 

게다가 위헌 요소도 없애 시행한다는 것을, 굳이 '안된다'며 글에 쌍심지를 켜는 이유도 궁금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임재성씨가 쓴 '군가산점'으로는 안돼, 제대로 보상하라' 는 그런 의문을 증폭시켰다. 그렇기에 필자는 '군가산점제를 터부시하는 진짜 이유가 무엇 때문인지?'라는 물음표 딸린 생각을 해본다

 

임재성 기자의 글을 여러번 읽어 보았지만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글의 핵심이 오락가락 하기 때문이다. 글은 제대로 된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는 하는 것 같은데, 군가산점은 안된다는 논리를 들고 있어 모호했다. 보통, 차별 때문이라면 위헌 요소를 없애서 제도를 보완해서 사용하면 되고, 가산점제가 턱없이 적은 보상의 혜택만 주는 것이 문제라면 좀더 실질적인 보상을 패키지로 주면 되는데 말이다.

 

- 국정감사에서 군 제대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외국 사례를 묻자 박종달 병무청장은 미국이 제대군인에게 5~10점의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실제 전투에 참여하거나 군복무시 장애를 입은 경우 등에 한정해서 가산점을 부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제도에서 가산점이 차지하는 비중은 일부에 불과하다. 광범위한 사회복지 혜택과 등록금 지원 등의 실직적 혜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중략)  임재성 기자의 글中

 

임재성 기자가 예로 든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가산점에 더해 다른 혜택을 더 주고 있다. 그 예가 일부에 한해 있다 하더라도 핵심은 군 복무자의 가산점 적용 여부이기 때문에 적용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위 예를 든 임재성 기자의 글은 정작 보완이나 실질적인 보상을 논했어야 옳았다. 하지만 정작 글은 '군가산점은 필요없다'는 억지 결론으로 끝을 맺는다. 만약 맞는 논리였다면 '군가산점'으로는 부족, 제대로 보상하라'가 맞는 결론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군가산점이 필요없다'는 결론은 이해됐지만, '군가산점의 필요없음'을 위해 만든 글의 억지 논리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굳이 반론을 쓴 이유는 군가산점제 문제 때문은 아니다. 이유는 다른 부차적인 것이었다. 임재성 기자의 '군가산점'으로는 안돼, 제대로 보상하라' 기사에서 나오는 '착취'라든가 '진압' 차별'등등의 단어는 읽는 내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했다. 즉 불쾌한 단어들이 반론을 쓰게 된 직접적인 이유다. 그렇기에 반론의 형식을 취했지만 '군가산점제'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반론이라기보다는 그냥 글의 뉘앙스에 대한 비판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불쾌함

 

보자. 임재성 기자의 글. 징병제의 암울한 유래에서부터 시작해, 군 복무를 마치는 것이 마치 무엇인가 부당한 권력에 의해 착취당했다는 식의 뉘앙스가 임재성 기자 글의 주요 흐름이다.

 

그런데 이 글은 나름 군복무를 마친 군필자인, 내 입장에서는 무척 안타깝게 다가온다. 자신과 입장이 다르다고 해서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낸 사회 구성원들의 노력, 사회 구성원들이 정한 의무마저 무턱대고 힐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일반적으로 징병제는 조국과 국가를 위한 희생으로, '권리'와 '의무'의 평화로운 교환으로 묘사되어왔지만, 실상은 '진압'과 '보상'의 과정이었다. (중략)  임재성 기자의 글中-

 

어떤 주장을 할 때, 다름을 이해하는 자세는 무척 중요하다. 그것은 생각의 다름일 수도 있고, 주장의 다름일 수도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문제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군대를 안 간 (기피자가 아닌), 그래서 힘든 고통을 겪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의 신념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것처럼 의무를 지키기 위해 군대를 간 젊은이들의 신념 또한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군가산점제' 문제를 논의하는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회 구성원이 해낸 의무를, 그저 진압과 보상이라고 규정하는 있는 임재성 기자의 글에서는 불쾌함을 느낀다. 이것은 '언어의 폭력' 아닐까?

 

-이처럼 한국사회에서 징병제는 '진압'만이 있었을 뿐 제대로된 '보상'이 없었다. 병역기피의 심리는 당연했다. 그러나 몽둥이를 든 국가 앞에서 "군대 가고 싶어서 가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라는 울분은 엉뚱한 방향으로 향했다. 유승준을 입국 금지 시켜도, 감옥에 있는 병역거부자들에게 욕을 퍼부어도 문제의 본질은 해결되지 못했다- (중략)  임재성 기자의 글中-

 

'몽둥이' '진압' '울분' '욕'. 이것은 2년이란 시간을 군복무 의무를 해낸 사람에게, 열악한 환경의 군대 속에서도 성실히 잘 주어진 의무를 수행해 낸 사람에게 너무나 잔인한 말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 젊은이들을 진압과 보상의 희생자라고 규정짓는 잔인한 단어에

머릿속이 멍해진다. 의무를 지킨 사람에 대해 '멋대로, 혹은 악의적으로 규정하는'것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의무 지킨 군필자에 대한 희롱은 말아달라

 

말은 바로 하자. 입국 금지 당한 모 가수에 대해, 감옥에 있는 병역 거부자가 아닌 병역 의무를 기피한 채 버젓히 성공하는 신의 아들들을 비판했던 이유. 그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한 의무를 지키지 않고 이득만을 챙겼기 때문이 아닌가. 그런 이들에 대한 비판이 엉뚱함이라든지, 울분이라든지, 욕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표현되는 것은 난센스라고 생각한다. 왜 의무를 지킨 것이 희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물론 너무 힘들어서 군 생활 도중에는 '짜증난다' '억만금을 줘도 안 온다'라는 말도, 불만도 종종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압이 무서워서, 몽둥이가 무서워서 군대에 끌려갔다는 임재성 기자 기사의 묘사는 꾸준히 의무를 수행하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짓밟는 일이다. 불편해도, 불쾌해도 의무를 수행한 근저는 결국 '의무'기 때문이다. 그 의무감이 군대에서 2년이란 시간을 버티게 만들고, 남게 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군가산점제' 문제를 논하는 글을 보면 왜, 늘 군대를 다녀온 군필자들이 '몽둥이가 무서워서 군대 다녀온 사람' '군대 안가려다 가게 된 사람'으로 묘사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곳에 울분을 표출하는 사람처럼 묘사되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 

 

2년이란 시간을 소모해, 국방의 의무를 해낸 젊은이들이 '왜곡된 글' '왜곡된 시선'에 상처받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로 명예를 살리는 일이다. 이것은 보상과 함께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이에 대해 많은 방안이 있을 수 있겠다.

 

그래서다

 

물론 임재성 기자가 말했던 바와 같이 무엇보다 실질적인 보상이 필요하다. 너무나 열악한 군복무시 월급은 하루 빨리 예산을 배정해 올려야 한다. 이것은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군복무를 해내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과거의 세대를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도 분명 생각해야 한다. 바로 명예다. 그것이 비록 턱없이 부족한 군가산점제도와 도로통행료, 국립공원 입장료, 철도료 등 공공시설 이용료 할인료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작은 긍지라도 심어줄 수 있다면 주는 혜택을 수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이 위헌의 요소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막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앞으로 계속해서 좀더 발전적인 혜택이 따라야 겠지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지 않았는가.

 

물론 (군가산점제 따위) 없어도 상관없지만, 많은 예비역들이 0.01%의 군가산점제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병역기피자'들과의 차이를 두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여성과의 차별이 아닌, 병역 기피를 한, 그리고 의혹 짙은 병역 면제를 한 일부 신의 아들들과의 차이를 확실히 해두는 것을 말한다. 이것도 군필자의 명예를 살리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이 든다. 위헌 요소를 없앤(여성 차별X, 병역 거부자 차별X) 군가산점제가, 진즉에 사법고시, 외무고시 같은 국가의 주요 법과 정책을 담당하는 시험에 적용되었더라면, 오늘날과 같이 병역 기피자, 의혹 짙은 병역 면제자가 만연한 정치인과 법조인의 사회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문득 궁금하다. 국방의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상류층과 사는 여러분은 행복한지.

2009.10.11 16:14ⓒ 2009 OhmyNews
#군복무가산점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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