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세대란과 부동산가격 급등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는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수도권전역에 확대 적용됐다. 사진은 서울 자양동의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최근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주변 부동산 시세가 표시 돼 있다.
유성호
"주식시장이 '비이성적인 과열(irrationally exuberant)' 상태에 있는 점이 매우 큰 위험." (스티글리츠)
"주식시장이 너무 많이, 너무 이르게, 너무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루비니) 최근 실물경기의 더딘 회복과 대비되는 주식시장의 급격한 상승에 대해 경고의 목소리들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증권사에서 돈 빌려 주식 사고 은행에서 대출받아 부동산 구입하는 한국의 가정들은 계속 늘어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유지하고 있는데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하염없이 오르는 상황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 수 없어서이다.
지난 3월 이후 주식 가격이 빠른 상승세를 보이면서 자신이 보유한 현금 범위를 넘어 빚까지 내면서 개미들이 주식투자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007년 11월에 그랬던 것처럼, 2009년 22일 주가가 1700선을 넘으면서 연중 최고점을 돌파할 무렵에 빚내서 주식 투자한 돈도 최고점을 찍었던 것이다. 과열이 아닐 수 없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바로 그 시점에서 증시가 극심한 변동성을 띠면서 하락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증시 과열에 대한 세계적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온 시점이기도 하다.
부동산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를 줄이고 부채를 상환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데 한국은 오히려 주택담보 대출이 급격히 팽창하고 부동산 가격도 서울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2009년 8월 말까지 은행과 비은행을 포함한 금융권 전체의 부동산 대출이 340조 원에 육박했다. 부동산 과열에 놀란 정부가 7월 7일 LTV(담보인정비율) 확대에 이어 9월 7일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 적용하면서 다소 진정되었지만, 적용을 받지 않는 비 은행 쪽으로 대출이 늘어나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빚 얻어 주식 투자하고 부동산 투자하는 시대가 다시 왔다고 할 것이다. 증권사들이야 개인들에게 신용융자 한도를 늘려주고 금리를 내려서 신용융자를 많이 풀면 그만큼 거래도 늘고 수수료도 늘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다. 은행들 역시 신용 대출도 아니고 주택을 담보로 잡아 대출을 해주었으니 주택 가격이 대출금 밑으로 떨어지지만 않으면 손실을 보지 않을 것이란 계산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도 손해 볼 것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는가?
소득 양극화보다 더 무서운 자산 양극화외환위기 이후 우리 가정 경제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항상적 고용불안으로 인한 노동소득 불안정성이 커지면서 가정 경제가 점점 더 금융 자산이나 부동산 자산 소득 증가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노동소득이 늘지 않으니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아 주식과 같은 금융상품을 구입하고 부동산을 매입하게 된다. 자산 소득을 늘리기 위해 다시 금융회사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일상생활의 금융화가 진행된 것인데, 경기침체 와중에서도 카드 대란이 터지기 직전인 지난 2002년 말 이후 7년 만에 다시 신용카드 1억 장 시대가 왔다는 사실이 이를 상징해주고 있다. 신용카드 1억 장 시대가 말해주고 있듯이 신자유주의 시대는 금융상품, 신용상품 홍수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쏟아지는 신용상품과 대출상품으로 현재의 부족한 노동소득을 채워주고, 다양한 보험 상품으로 미래 노동소득의 불확실성을 보장 받으며, 더 나아가 엄청나게 많은 각종 주식 관련 상품과 금융투자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늘어날 가망성이 없는 노동소득을 대체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 것이 오늘날 가정경제이다.
하지만 노동소득 정체와 노동소득 양극화를 피하기 위해 부채까지 동원하여 자산소득 증대를 기대했지만 실제 돌아온 것은 소득 양극화보다 더 심각한 자산 양극화와 늘어가는 가계부채, 그리고 이자부담이었다. 소득 양극화에 대비한 자산 양극화 비교 연구가 아직 충분히 되어있지는 않지만, 최근 발표된 보고서의 분석에 의하면 2007년 기준 가계 자산(주택, 토지, 금융자산)의 불평등을 나타내는 지니계수가 0.7069로 소득 지니계수 0.3579의 두 배에 달했다(이정희 의원이 국회 예산정책처에 의뢰한 "가계 자산에 대한 지니계수 추정과 소득 지니계수 비교", <프레시안> 2008.9.2).
이 보고서는 특히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게 되면서 부동산 소유계층의 자산 상승이 자산 양극화에 큰 영향을 준다고 지적하는 한편, 단지 부동산 자산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의 격차가 발생하는데 그치지 않고, 소득이 적은 가계의 전세나 월세 비용을 증가시키면서 자산이 저소득층에서 거꾸로 고소득층으로 흘러가게 된다는 점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