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방제림관방제림에서 휴식을 취하는 어르신
문병호
우연인지 아니면 두 장소의 특징들 때문인지, 메타세콰이어길엔 젊은이들이 카메라를 들고, mp3를 꽂고 거닐고 있었는데, 관방제림에 오니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고목을 벗삼아 쉬고 계시다.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출발해 관방제림을 통과하면 죽녹원의 입구로 나온다. 어제 왔던 길이다. 어제의 경험을 되살려 어려움 없이 터미널 부근으로 이동해 아침겸 점심을 먹었다. 아침에만 두 곳을 돌아봤는데도 11시다. 일찍부터 일어나 서두른 덕분이다.
오늘은 목포에 가서 1박을 한 후에 아침 날씨를 봐서 청산도로 들어가거나 보성이나 해남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목포에 가기엔 시간이 좀 이르다. 관광지도를 꼼꼼히 살펴보다 광주로 되돌아 가는 길의 중간에 위치한 창평에 들리기로 결정했다. 버스가 자주 없는 탓에 1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창평행 버스에 올랐다.
7. 좀더 단장이 필요한 슬로우시티 창평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군내버스를 이용했는데 운행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많이 타셨기 때문에 버스는 어른들이 안전하게 내리시고, 또 타신 후에 좌석에 앉으신 후에야 출발하는 터에 정류장에 한참을 머물러 있는다. 뒤에 차가 밀리는 것도 아니니 급할 것도 없다. 덕분에 정류장 정류장마다의 풍경들을 여유롭게 살펴볼 수 있었다.
창평은 최근에 슬로우시티로 지정된 곳이다. 느리지만 멋진삶을 지향한다는 슬로우시티, 고택과 돌담길, 한적한 시골풍경... 등등이 관광안내상의 슬로우시티 창평의 소개말이다. 하지만 실제의 창평은 아직 좀 아쉬웠다. 슬로우시티 지정후에 한참 기반공사를 하는 중이어서 고택들은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고, 사진에 아름답게 찍혀있던 돌담길은 보수한지 얼마 안되는지 '새로지은 담'의 티가 너무 많이 났다.
가을의 초입인지라 그나마의 돌담길도 여름내 무성히 자란 넝쿨류의 풀들로 뒤덮여 있었다. 압권은 깃발들과 현수막. 창평의 슬로우시티 선정을 축하하는 현수막과 민방위 깃발처럼 전봇대마다 두 개씩 꽂혀있는 깃발이 그나마 돌담길의 정취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느린 동시에 멋져지려면 좀 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관광자원이 될 수 있으니 홍보와 편의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한 지자체의 일이다. 다만, 느림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좀더 느리고 멋진 방식의 개발과 홍보를 해주길 부탁한다.
아무래도 창평을 지금 방문하라고 추천하기는 힘들다. 정비가 이루어진 내년쯤에는 좀더 멋진 모습이 될 듯하다. 그쯤되면 마을 입구 사무실에서 그냥 빌려주는 자전거를 타고 느림과 멋짐을 동시에 맛볼 수 있을듯 하다.
8. 어항 목포의 재발견저녁시간에 이동하려던 계획을 수정해 오후에 목포로 향한다. 생각보다 창평이 찍을만한 풍경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구름이 걷혀가는게 목포에서 일몰을 찍을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광주를 거쳐 목포행 직행버스에 올랐다. 목포에 사는 친구와 저녁 술약속도 잡고 일몰을 찍을 만한 곳에 대한 정보도 얻는다.
목포에 도착하니 5시쯤 되었다. 고향의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친숙한 곳이다.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창평에서의 푸르고 높던 하늘은 다시 비구름에 덮여있다. 일몰사진을 찍을 수 없게 돼버렸고 그래서 너무 일찍 도착한 목포에서 할 일이 없어져 버렸다. 무작정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팔이 다쳐 일을 쉬고 있는 친구가 한 팔로 차를 몰고 나온다. 한 팔이 불편한 친구를 기사 삼아 목포를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