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런 교회 목사를 이해할 수 없다

천륜 도리 다하고 천당 가는 방법은 없을까?

등록 2009.10.07 10:04수정 2009.10.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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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이번 추석 때 집에 온대요?"
"아니, 일요일이 겹쳐 못 온다더구나."


명절이면 응당 찾아야 할 부모. 그러나 장남인 형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형의 직업은 교회 목사. 정확히 말하면 어느 도시 대형 교회 부목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 외딴 섬에서 3년간 목회 활동을 했다. 그래 명절날 형의 부재에도 그러려니 했다.

형 얼굴?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다. 하여, 한 번은 가는 데만 12시간이 넘게 걸리는 외딴 섬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찾아 갔었다.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형제 간 정(情)은 이런 거라 믿었다.

올 추석에는 형 얼굴 대면 할 줄 알았다. 2남 2녀 중 작은 누이는 미리 다녀갔다. 큰 누이와 막내인 나는, 팔십 이쪽저쪽인 부모님 옆에 사는 터라 자주 뵙는다. 그렇지만 형은 또 오지 않았다. 마음 상했다. 동생도 그러할진대, 부모님 마음이야 오죽할까.

하나님 '은혜' 입은 형, 목사가 운명?

많은 직업 중 자식이 제일 싫어하는 부모 직업 중 하나가 성직자라 한다. 이유를 "남들 앞에서 보란 듯이 설교하지만 다른 사람이 모르는 가식을 자녀들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 들었다. 성직자가 차지하는 비중을 말해주는 것일 게다. 동의한다.


우리 집 교회 섭렵기는 역사가 깊다. 1950년대부터 교회를 다녔으니 말해 뭐할까. 나도 "하느님 이외의 미신을 섬기지 마라"는 소릴 듣고 자란 모태 신앙이다. 아버지는 장로고, 어머니는 권사였다. 초등학교부터 부모님을 따라 새벽 예배를 다녀야 했다.

형이 목사가 된 건 어찌 보면 운명이었다. 형이 여섯 살 되던 해인가, 온 몸에 화상을 입었다. 설날 깡통으로 쥐불놀이 하다, 통 크게 기름 통 전체에 불을 붙이다 전신에 화마를 입었다고 했다. 주위에선 빨리 병원에 가길 권했지만 부모님은 거절했다고 한다. 믿음으로 나을 수 있다는 신념이었단다.


할머니는 이를 보고, "저것들이 교회 다니다가 손자 죽이네" 노발대발 난리였단다. 그래도 꿈쩍 않았던 부모님은 형을 집에서 흉터 하나 없이 말끔히 치료했다. 내 생각엔 기적이었다. 그러나 부모님에겐 당연지사 '하나님의 은혜'였다.

살아서 천륜 도리 다하고 천당 가는 방법은 없을까?

지금 이 순간 내게 필요한 건 부모가 자식 보고 싶을 때,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천륜으로 맺은 자식 된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나의 바람을 외면했다. 형의 얼굴을 좀처럼 볼 수가 없어서다.

다른 가족은 형을 이해한다. "목사는 성직이라 교회 성도를 돌보는 게 우선이다"고 여긴다. 나는 가족에게 항변한다. "형이 목사면 목사지, 부모 형제에게도 목사냐?"고. "부모 있고 자식 있지, 하나님 있고 자식 있냐?"라고.

그랬는데 지난 추석, 40대 초반의 자녀 둘을 둔 또 한 명의 목사를 부모님 댁에서 처음 만났다. 부모님은 "목회 때문에 집에 가지 못한 목사님 가족을 집으로 초대했다"고 설명했다. 목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목사님, 댁이 어딘데 명절에 부모님께 안가셨어요?"
"○○예요. 목회 때문에…. 대신 여기에 이렇게 왔잖아요."

그는 딱 내 형의 판박이였다. 나는, 이런 교회 목사들을 이해할 수 없다. 아니, 신뢰할 수 없다. 교회에 다니는 목적 중 하나는 "죽으면 천당 간다"는 것이리라. 살아서 자신의 도리를 다하고 천당 가는 방법은 없을까?

부모님은 형을 무척이나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와 U포터에도 송고합니다.
#목사 #천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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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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