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 선거가 진행된 2007년 12월 19일 저녁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후보와 부인 김윤옥씨가 여의도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선대위 관계자들과 함께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권우성
먼저, 투표는 했지만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유권자들에 대해 자세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첫 번째는 정동영 후보 지지층이다. 2007년 대선에서 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투표자 중 26.1%의 지지를 얻었다. 이들은 호남 거주자 및 수도권 호남 출신들로, 고정적 민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크므로 2002년 대선 때의 '호남 지지층'의 특성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성향은 크게 보아 과거에 비해 변한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명박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을 지지할 가능성이 없는,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하는 고정 비토층이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이회창 후보 지지층이다. 이들은 초창기 이명박 후보 지지에서 이탈해 보수 진영의 제3후보인 이회창 후보로 옮겨 간 층으로 도덕성을 중시하는 보수층, 즉 '반 이명박 보수층'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이회창 후보는, 민주신당 후보는 찍기 싫고 이명박 후보도 못마땅해 하던 충청 유권자들에게도 대안적 선택지였다. 이들은 같은 이념적 색깔을 가지고도,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지 않고 보수 진영의 제3후보를 지지한 만큼 이명박 후보 개인에 대해 그 어느 집단보다 부정적 태도를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또 다른 집단은 바로 진보적 유권자 집단이다. 이들은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정동영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으며, 상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문국현 후보와 권영길 후보를 지지한 이들이다. 대선에서 두 후보의 득표율을 합하면 8.7%였다.
한편, 진보층 중 투표를 하지 않은 층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의 특성을 요약하자면 '진보적 냉담층'이다. 대개 이들은 여론조사에서는 진보 후보를 지지한다고 했지만 실제 투표를 하지 않았거나, 과거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는 마땅히 지지할 후보를 찾지 못해 아예 투표를 포기한 층으로 지난 17대 대선의 투표 기권층 중 진보 성향 유권자들의 비율이 적지 않다는 얘기이다. 또 투표하지 않은 층이 꼭 진보층이 아니더라도 20, 30대 유권자들이 많아 이들을 이명박 대통령의 잠재적 호감층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 진보 냉담층은 기존의 민주당이나 민노당, 그리고 새로 부상한 창조한국당을 끝내 대안으로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성향상 '비보수, 진보 성향'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현실 정치에 대한 절망감 때문에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은 측면이 강하므로 투표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문국현, 권영길 지지층과 함께 이명박 정부에 가장 반감이 강한 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MB 지지층의 충성도도 약하다마지막으로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한 층 역시 주의 깊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명박 후보의 지지층은 앞서 지지 형성 단계 과정에서 설명했지만 대개 수도권 중산층과 영남 보수층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영남에 기반을 둔 전통적 한나라당 지지층의 특성 역시 이명박 정부에 대한 지지가 강고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지지층 내부에 존재하는 '친박근혜, 비이명박 정서' 때문이다. 이들 친박 보수층이 가장 뚜렷하게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이었다. 이들은 비록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에 표를 던졌지만, 18대 총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아닌 친박연대나 친박 무소속 후보들을 지지한 층이다. 지난 총선에서 친박 후보들은 무시할 수 없는 득표율을 기록했고,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실제로 당선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지지층 구성만으로 보면 출발 시점부터 박근혜 전 대표와의 연합 정권의 성격이 강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들 친박 한나라당 지지층은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탐탁치는 않았지만, 공동의 적인 '좌파 정부'를 종식시켜야 했기 때문에 이명박 후보를 찍은 층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30%가량의 국민 중에서도 이명박 후보를 끝까지 지킬 만한 충성층의 비율은 더더욱 줄어든다.
다음은 '수도권 중도층'인데, 이들 역시 이명박 정부의 든든한 고정 지지층이 되어 주기에는 그다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 정동영 후보는 5년 전 노무현 대통령이 얻은 표의 절반 수준의 득표를 했는데, 이들이 이탈하여 가장 많이 이동해 간 곳은 바로 이명박 후보였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득표율이 매우 높았으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2002년 대선의 노-정 단일화 이전에 '정몽준'을 지지했던 수도권 중산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2007년 초 지지도가 20%에 이르던 고건 전 총리의 사퇴 이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대략 10%가량 늘어났는데, 이들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중도적 중산층, 즉 '이탈한 노마드' 계층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은 비록 진보·개혁 진영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이명박 후보에게 이동해 갔지만 특성상 대개 중도적이며 유동성이 커 새로운 정부의 고정적인 핵심 지지 기반이 되기는 힘들다. 다만 이들 중 일부가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규제 완화나 감세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면서 자신들의 이해관계 차원에서 새 정부의 고정 지지층으로 정착하는 흐름도 어느 정도 나타나지만 그 비율이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여기서 설명한 범주 바깥의 개별적 지지층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층은 생각만큼 넓지 않으며, 유동적이어서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취약한 지지 기반을 가지고 출발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얻은 득표가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특별히 많다고 볼 수 없으며, 지지자들도 '인물보다는 정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지한 사람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지하지 않은 사람 중 상당수가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인물 개인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지고 있거나, 정치 성향 면에서 2002년 대선 때보다도 진보 성향이 강화된 유권자의 비중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기보다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싸늘한 시선을 가진 대다수 국민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이명박 정부의 미래는?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풍요에 대한 목마름을 해소해 줄 것'이라는 기대를 심어 주며 권력을 획득했다. 그러나 그런 대중의 바람은 몇 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절망'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아지지 않는 민생, 부자 중심의 경제, 그리고 시대착오적 권위주의 등이 이명박 정부에 대한 대중의 분노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의 기간은 바로 민주화 집권 세력에 이어, 산업화 세력 역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줄 능력이 없다는 것을 대중들이 확인하는 기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이런 실망감은 곧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붕괴시켰다. 고질적으로 낮은 대통령 지지도, 그리고 큰 변화 없이 무응답층만 늘어 가는 정당 지지도는 대중의 정치에 대한 기대가 바닥 수준임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임기 2년째가 되어도 4대강 개발이나 미디어법 추진 등 새로운 정부가 적극 추진한 정책 중 국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이 거의 없다는 것은 국민이 희망을 가질 만한 어떤 일도 계획되고 있지 않음을 의미한다. 여론 흐름이라는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를 평가한다면 '국민이 원하지 않는 특권층 중심의 정책을, 이념과 철학을 앞세워 억지로 밀어붙인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6월에 이르러 '서민 중심 중도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다. 이는 집권 이후 자신의 정책 기조에 대한 최초의 수정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국면 전환 시도가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인지, 아니면 지방선거 등을 고민한 전략적 선택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또 그런 서민 경제 노선이 보수 진영 내부의 정체성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는 하겠지만, 대중 여론 차원에서 어떤 특별한 변수가 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물론 서민 중심 중도정치라는 구호 자체가 여론을 더 악화시키는 성격을 가지진 않는다. 그러나 그런 선언이 단지 구호로서만 존재할 뿐, 실제 승자 독식, 약자 도태의 사회구조에 대한 전면적 방향 수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한계에 부딪힐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