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2권
문학동네
작품 속에서 아오마메는 냉철한 킬러다. 직업은 '헬스 인스트럭처'이긴 하지만 그녀는 어느 재벌가 노부인의 지시를 받고 남성들을 죽이는 일을 한다. 아오마메의 이 분노는 사춘기시절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친구를 잃어버린데서 시작됐다.
친구를 죽음으로 몰고간 가부장제의 권력과 폭력에 대항하기로 한 뒤로 아오마메는 여성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남성을 차례차례 '다른 세계로 이동'시킨다.
마침내 10대 소녀를 성의 제물로 농락한 종교집단의 '리더'를 살해하러 간 그녀는 그곳에서 '1Q84'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되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리더와 일종의 밀약을 맺게 된다. 그리고 덴고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받게된다.
<1Q84>에는 두가지 대립항이 뚜렷이 존재한다. 선과 악, 밝음과 어둠, 진실과 거짓, 소유와 상실, 낮과 밤, 실체와 그림자... 그러나 단순히 어느쪽이 좋고 나쁘냐를 따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선도 있고 악도 있다. 어둠도 있고 밝음도 있다. '리틀피플' 또는 '빅브라더'가 있는가 하면 거기에 반하는 힘도 있다. 이러한 세계관은 작품 속 '리더'의 입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인류, 선과 악,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못지않은 무게감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선과 악의 균형속에서 찾는 절대선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거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거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거지. 균형, 그 자체가 선인거야." 2권 289쪽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은 덴고가 치매요양소에 있는 자신의 의붓아버지를 찾아간 장면이다. 한때 무척이나 증오했던 자신의 아버지와 마주하며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절절이 깨닫게 된다. 평화롭지만 무척이나 가슴 아프고 눈물이 나는 장면이었다. 그는 치매에 걸린 듯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독백처럼 내뱉는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예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거예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2권 211쪽이 복잡하고 난해한 플롯과 비유 상징에도 불구하고 <1Q84>를 통해 하루키가 이야기하고 하는 점은 '사랑'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사랑인 것이다. 예전에도 하루키의 작품에는 '사랑'이 등장했다. 그러나 그때의 사랑이 형체가 애매하고 허무한 것이었다면 <1Q84>의 사랑은 또렷하고 분명하다. 부모, 가족, 연인, 부부는 물론이고 온 인류를 구원하고 살릴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 '사랑' 바로 하루키가 <1Q84>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세상에 외톨이로 남겨진 두 사람, 덴고와 아오마메. 둘은 지구상에 홀로 남아 고독이 뼈에 사무친다. 가정과 인연을 끊은 아오마메와 덴고는 세상에 의지가지 없이 삭막하고 건조한 삶을 산다. 공백과 상실로 점철된 삶. 그러나 둘에게는 무엇보다 '서로'가 있었던 것이다. 비록 단 한번도 만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결국 사랑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세상에 그런 사랑이 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세상에는 그런 사랑한번 못해보고 죽는 사람도 있고 그런 사랑이 있는 줄도 모르고 남루하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는 기분좋게 흔들리는 완행기차를 타고 가는 듯한 즐거움이 있다. 목적지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여행의 과정과정이 주는 소소하고 잔잔한 즐거움에 흠뻑 빠지게된다. 느리게 스쳐가는 풍경도 찬찬히 보고, 앞좌석에 앉은 승객을 보며 슬쩍 그 사연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기차내의 캐리어 카에서 귤이나 간식을 사먹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비유하자면 하루키의 소설은 그러한 소소하고 잔잔한 재미들의 총집합이다. 간혹 귤을 먹다, 이 귤의 전생은 뭐였을까 생각하는 엉뚱함과 재기발랄함까지 포함한다면.
<1Q84>가 재밌냐고 다시 묻는다면 나는 분명 재미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루키가 펼치는 자유로운 상상력, 현실과 환상,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평행 세계(원래의 세계와 병행하여 존재하는 또다른 세계)는 읽을수록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작품의 결말에 '에비스노'선생과 '선구'종교단체에 대한 언급이 좀 애매모호해서 미진한 감도 없지만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 하루키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적확한 표현, 허를 찌르는 유머적인 비유, 역사 인류학 종교 사회학 등 인문학 지식의 섭렵까지 포함하면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메뉴를 한 자리에서 음미한 듯한 포만감이 느껴진다.
하루키의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듯이 이 소설에도 많은 영화, 소설, 음악이 등장한다. 목록을 작성해서 시간날 때마다 읽어두는 것도 <1Q84>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1Q84>를 단 한번만 읽고 덮을 수 없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1Q84>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책, 음악, 영화 |
음악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마이클잭슨의 <빌리 진>, 바흐의 평균율, 냇킹콜의 <스위트 로레인>, 이츠 온리 어 페이퍼 문, 사운드 오브 뮤직의 <내가 좋아하는 것들> , 바흐의 마태수난곡, 존 다울런드 <라크리메>, 하이든의 첼로협주곡, 바니 비가드 연주의 <애틀란타 블루스>, 비발디의 <목관악기를 위한 협주곡>, 빌리 홀리데이, 듀크엘링턴, 루이암스트롱의 재즈음악들, <한떨기 장미꽃>, 텔레만의 독주악기를 위한 파르티타, 루이암스트롱의 <샹테 레 바>, <마더스 리틀 헬퍼> <레이디 제인> 롤링 스토스의 <리틀 레드 루스터>,
책 만주철도에 관한 책, 세계의 작곡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헤이케 이야기> <곤자쿠 이야기> <산쇼 대부>, 조지오웰 <1984> 안톤체호프의 <사할린 섬>, <마틴 처즐위트>,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한 독일작가의 <고양이마을>(덴고가 아버지를 찾아가서 읽어준책, 이건 하루키가 가공하여 쓴 소설같은 느낌>
영화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 <그날이 오면>, <거미의 성>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 스티브 매퀸의 <겟어웨이>, <스팅> ,<마이크로 결사단>, <화려한 패배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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