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락해 가는 모습의 영화촬영장
이승철
아직은 짙푸른 산골짜기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다랑이논들이 정다운 길을 걸어 산자락에 접어들었다. 숲길엔 여기저기 들국화가 피어 있고 밤나무 밑엔 알밤도 떨어져 있는 모습이 가을다움을 한껏 드러내는 풍경이다.
중턱으로 접어들자 저만큼 오래전에 <단적비연수>를 촬영했던 영화촬영 세트장이 나타난다. 세트장 입구 넓은 마당엔 거대한 나무 밑 둥이 세워져 있었지만 진짜나무가 아니라 가짜나무였다.
가을빛 짙어지는 아름다운 산골마을 풍경세트장 안으로 들어서자 황량한 느낌이 쏴아 밀려온다.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진 촬영 세트는 벌써 몇 년이 지나서인지 썩어가고 퇴락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영화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어 보여 오히려 생경하기까지 하다.
산길은 완만하고 평탄했다. 영화세트장에서부터 오르는 길은 양쪽 고산 평원에 철쭉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서있는 모습이 봄철이었다면 철쭉꽃이 매우 화려했을 것 같다. 그러나 철쭉꽃 대신 하얗게 휘날리는 억새꽃들이 조금은 쓸쓸한 풍경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