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 사건은 들끓는 냄비로 해결할 수 없다

등록 2009.10.01 11:38수정 2009.10.0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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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왜?"
"나영이가 누구예요?"

"나영이?"

 

잘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기억하는 이름에는 '나영'이라는 이름은 없었다.

 

"나영이를 왜 묻는데?"

"어떤 아저씨가 폭행을 해 큰 상처를 입었대요."

 

더 이상 이야기를 이어가지 못했다. 아버지이자 남자로서 이 참혹한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판단을 잘 할 수 없었다. 아버지로서는 앞으로 잘 모르는 아저씨가 과자를 사준다고 말하거나 이상한 행동을 하면 소리를 질러야 한다고 주의를 주지만 한 편으로는 다른 집 눈으로 보면 내가 잘 모르는 아저씨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의심받는 환경이 되어버린 것이다.

 

'나영이 사건'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누리꾼들은 어린아이를 상대로 한 잔혹한 범행수법에 비해 법원이 가해자에게 선고한 징역 12년이라는 처벌이 있을 수 없는 판결이라고 분노하면서 청원 서명 운동까지 벌이고, 나영이 기사에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도 나섰다. 이 대통령은 30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보도를 보고, 인터넷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을 느낀다"면서 "평생 그런 사람들은 격리시키는 것이 마땅하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대통령의 마음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런 유형의 범죄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며 "여성부와 법무부 등 관계부처가 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가해자 조 아무개씨를 가석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여성위원회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아동 성폭력 범죄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가장 엄한 형벌로 다스려 재범을 줄여나가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사법부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대통령를 비롯한 정부, 국회, 언론, 누리꾼 모두가 참혹한 범죄에 대한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나영이 사건이 참혹하지만 나영이 같은 어린이 성폭행 사건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폭행, 살인 사건은 나영이가 처음이 아니다.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는 경기도 안양 초등학생 이혜진, 우예슬 어린이 실종·살해 사건, 2007년 4월 제주도 양지승 어린이 사건, 2006년 12월 서울 용산 허 아무개 어린이 살해사건이 그 예다.

 

지난 달 15일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은 자신이 돌보던 여자 어린이 등 원생 4명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포천시 모 보육시설 원장 49살 김 아무개씨를 체포했고, 제주지방경찰청은 지난 7월 9일 어린이를 성폭행한 혐의로 홍모씨를 체포했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성범죄는 늘고 있다. 2008년 3월 경찰청이 발표한 어린이 성범죄를 보면 2003년 642건, 2004년 721건, 2005년 738건, 2006년 980건, 2007년에는 1081건으로 증가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439건(68.4%)이 늘어난 셈이다.

 

나영이 가해자가 받는 처벌이 관대한 것에 대한 분노와 함께 나영이 같은 아이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어린이 성폭행범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우리 사회에서 그 동안 관대했다.

 

성추행을 하고서도 다시 국회의원이 된다. 교육 공무원 중에는 성추행같은 성범죄를 범하고서도 나중에 다른 기관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공직 사회에도 성범죄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은 지난 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여성위원회 회의에서 "성매매특별법이 제정 시행되기 시작한 2004년에는 101건에 불과하던 공무원들 성범죄 행위가 2005년에 98건으로 다소 감소추세를 보였으나, 2006년 204건, 2007년 223건, 2008년 229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다가, 올해 5월에는 같은 기간 대비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고 밝혔다.

 

박선영 의원 발표에 따르면 "부처별 공무원의 성범죄는 올해 5월을 기준으로 교육부 공무원이 10명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법무부(6명)였으며, 행정자치부, 정보통신부, 경찰청, 소방방재청 소속 공무원이 각각 5명으로 그 뒤를 이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와 법무부, 행정자치부, 경찰청 공무원들은 성범죄를 예방하는 교육과 처벌을 하는 부처다. 그런데 이들 부처에서 성범죄 공무원들이 더 많이 나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로 직무유기일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성범죄에 얼마나 열악한 환경인지 알 수 있다. 어린이 성폭행범은 더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정부의 대책이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나영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분노해야지만 냄비가 되면 또 다른 나영이가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 다른 나영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우리 사회는 성추행과 성희롱, 성폭행 같은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공직 사회에 발을 내딛지 못하게 해야 한다.

 

성추행을 하고서도 지역에서 한 일이 많고, 당에 공헌을 많이 한 사람이 공천을 주는 정당은 철저히 심판해야 한다. 어린이 성폭행범은 철저히 격리해야 한다면서 자신은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 국가 지도자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어릴 때부터 철저히 자기 존중만 아니라 다른 사람 몸도 존중히 여기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가르칠 때 동무들 몸도 귀중하게 생각한다.

 

성폭행 범죄에 대해서는 감형이나, 가석방을 허용하지 말고, 더 엄중하게 처벌할 수 있도록 법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성폭행범에 대한 철저한 교육은 말할 것도 없다. 엄중한 처벌과 함께 철저한 교육만이 재범을 막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2009.10.01 11:38ⓒ 2009 OhmyNews
#나영이 #성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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