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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권 내부로 흡수되기는 했지만 문노가 이끄는 조직은 신라 왕실에게 여전히 위협적인 존재였다. 가야 출신들로 구성된 데에다가 서민들이 대거 가담한 조직이었기 때문이다. 진지왕 폐위를 계획하던 사도태후-미실 정권은 문노 세력이 거사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막는 한편 이들의 역량을 거사에 활용하기 위해 국선 문노에게 통합을 제의했다. 이는 양대 조직을 통합하자고 제의한 것인 동시에 진지왕 폐위에 동참하라고 제의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2개의 화랑도가 통합되고 뒤이어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년) 즉위 후에 문노가 설원랑에 이어 제8세 풍월주를 차지하게 되었다. 문노를 국선이라고도 부르고 풍월주라고도 부르는 것은 이러한 사정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코스를 밟았더라면 화랑도 안에서 출세하기 힘들었을 문노는 이처럼 제2의 화랑도를 건설한 뒤에 이를 기반으로 기존 화랑도와 통합하는 방법으로 화랑도의 수장에 오르게 되었다.
이처럼 비주류의 한계를 뚫고 주류사회를 향해 과감히 압박해 들어오는 문노의 존재에 대해 특별히 주목한 한 여인이 있었다. 그는 바로 미실이었다. 가야인들과 서민들의 지지를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 대해 특히 비판적인 문노를 어떻게든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미실의 판단이었다.
미실이 문노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계책은 소위 '미인계'였다. 자신의 사촌 자매인 윤궁을 문노에게 소개해준 것이다. 문노가 제2의 화랑도를 바탕으로 국선의 자리에 오른 576년 이후의 일이었다. 이때만 해도 문노의 신분이 낮아서인지, 골품이 없는 문노와 진골 골품의 윤궁은 정식 혼인을 치르지는 않았다. 두 사람이 정식 부부가 된 것은, 문노가 진평왕 옹립 때에 세운 공을 발판으로 골품을 얻음으로써 양쪽의 신분이 대등해진 이후의 일이었다.
사촌 자매인 윤궁을 이용해서 문노를 자기편으로 만들겠다는 미실의 전략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화랑도 정신을 내세우며 미실의 정치개입을 비판하던 문노가 윤궁과의 사이에서 첫아들 대강을 얻은 뒤로는 미실에 대한 태도가 서서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종전 같았으면 철저하게 미실을 비판했을 문노가 첫아들 대강을 낳은 뒤로는 미실에 대해 말 그대로 '대강 대강' 대처한 것이다. <화랑세기>에 따르면, 문노의 태도가 바뀐 데에는 윤궁의 끊임없는 설득이 주효했다고 한다. "미실에게 잘해야만 우리 자식들이 잘살 수 있다"며 윤궁이 계속해서 남편을 설득했던 것이다.
자신을 두고 "초년의 기상이 없어졌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자, 이에 대한 문노의 반응은 아주 명쾌했다고 한다. "너희도 살아보면 안다!" 미실 앞에서 핏발을 세우던 드라마 속의 문노와는 너무나 딴판의 모습이었다. 부인 윤궁의 집요한 설득 속에 문노는 미실의 '순한 양'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은 '청년 문노'의 극대화'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묘미'를 알기 시작한 문노는 582년에 45세의 나이로 풍월주에서 퇴임한 후 그런 묘미에 더욱 더 빠져버렸다고 한다. <화랑세기> 문노 편에 따르면, 풍월주에서 물러난 이후로 문노는 아내와 함께 수레를 타고 야외로 소풍 나가는 것을 즐겼다고. 드라마 속 문노는 서라벌에서 잠적한 뒤로 농촌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했지만, 실제의 문노는 이처럼 안락하고 여유로운 말년을 보냈던 것이다.
부인과 함께 세상을 즐기는 한편, 문노는 퇴임 이후에 두 가지를 더 배웠다. 하나는 술이고 하나는 여자였다. 40대 중반에 들어 처음으로 술을 배우고 또 처음으로 첩을 들인 것이다. 술과 여자를 알았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새 사람이 되었다. 시시비비 가리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늦게 배운 도둑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검술과 화랑도 기개를 중시했을 뿐만 아니라 탁월한 조직력을 보유했던 '청년 문노'는 어느새 술과 여자와 화목을 우선시하는 '중년 문노'로 변하고 말았다.
그것을 '변절'이라고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변절'의 삶을 살던 문노, 그는 606년에 별 탈 없이 최후를 마쳤다. 정의에 불타던 청년 시절과 달리 이미 현실에 타협해버린 늙은 문노는 인생을 맘껏 즐기다가 편안하게 인생을 마감했다. 수나라의 중국통일 이후로 당시의 동아시아를 휩쓸던 정치적 격변이니 신라의 위기 하는 것들은 이미 문노의 관심 밖에 있었다.
비담 같은 부담스러운 제자가 "내 책 내놓으라!"며 칼 들고 설칠 일이 전혀 없는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실제의 문노'는 술과 여자와 화목을 맘껏 향유하다가 편안히 눈을 감았다. 유신에게 비법을 전수하려다가 불의의 피살을 당해 목덜미를 움켜잡고 쓰러진 '드라마 속 문노'의 최후는 실제의 최후와 비교한다면 정말로 멋진 최후라고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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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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