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몰리셰 아디스타르 2007(앞). 마리 뒤카르테 2006. 스포츠화
김형순
로마시대에 샌들은 착용유무에 따라 귀족과 노예의 신분을 구별되었다. 중세에는 구두조합도 생겼고 신발의 유행을 생겼다. 13세기에 와서는 신분이 높을수록 신발이 뾰족해지고 길어졌다. 나중엔 길이가 50cm까지 늘어났다. 르네상스이후에는 신발이 실용적으로 넓어지고 길이는 짧아진다.
18세기 프랑스혁명 때에는, 나막신이 판탈롱과 함께 혁명파의 상징적 복장처럼 되었다. 단단한 나무로 만든 이 신은 화려한 클록(clog)으로 변신했고 사보(sabot)로 불렸으나 노동파업 때 이 신발을 기계에 던져 공장 문을 닫게 하여 '사보타주'하는 어원을 낳기도 했다. 19세기에는 곰발바닥처럼 신발 폭이 넓어졌고 굽은 60cm까지 높아졌다.
20세기에 들어와 옷과 맞춰 신는 토털패션도 생기고 재봉틀이 보급돼 신발도 대량생산가 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대부터는 사넬 같은 하이패션신발과 고급제화점도 등장한다. 최근에서 하이테크스포츠화가 하루가 다르게 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엔 조선시대 제사 때 착용하는 '흑피혜(黑皮鞋)'가 있었고 사대부나 양반계급의 고령자가 평상시에 편하게 신는 '목화'와 한말에는 왕도 평상복과 함께 신는 '태사혜(太史鞋)' 그리고 '발막신', '짚신' 등이 있었다. 여자 신으로 고무신과 비슷한 '당혜(唐鞋)', 상류층 부녀자들이 신은 '진신', 서민들이 주로 신은 '미투리', 나무로 곱게 만든 '나막신'이 있었다.
1950년대 유럽에선 신발이 인구증가에 영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