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에 나온 지요하의 첫 번째 저서 박범신 선배의 주선으로 출판된 이 책은 1967년(내 나이 19세 때) 초고가 만들어졌다. 1984년 출판 당시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하는 서산 출신 장기욱 변호사가 2천 권을 사주기도 했다.
지요하
당시 부산일보 연재소설 <불꽃놀이>를 출판했던 출판사에 적극적으로 내 소설을 천거하여 출판이 되도록 한 박 선배는 내게 소설의 제목을 <신화 잠들다>로 하자고 제의했다. 내 소설을 정독했기에 그런 제목을 생각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제의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내 최초의 책인 <신화 잠들다>는 출판도 제목도 박 선배와 나의 특별한 인연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그 해 11월 어느 날, 내 생애 최초의 책인 그 책을 가지고 고향에서 출판기념회 행사를 가졌다. 그 행사에 박범신 선배는 가족과 함께 내려와서 참석해 주었고, 또 축사를 해주었다. 그 일로 박범신 선배는 그때 처음 태안을 찾은 셈이었다.
박범신 선배 덕에 세상에 나오게 된 내 최초의 책인 장편소설 <신화 잠들다>는 문학평론가 권영민 서울대 교수가 그 해 연말 한국일보 지면에 '문학 결산'을 하면서 주요 수확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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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여름 박범신 선배가 가족과 함께 만리포를 찾았을 때 이후로는 박 선배를 자주 만나지 못했다. 박 선배가 안양을 떠나 서울 평창동으로 이주한 뒤부터는 서로 사는 곳이 다르고, 나 역시 점점 바쁜 생활 속에서 여유를 잃게 되면서 만나는 일이 드물게 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십 수년이 지난 1998년 어느 날 박범신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KBS 2 TV의 '그곳에 가고 싶다'라는 프로에 출연하게 되어 서산 천수만의 간월도를 가게 되는데, 그 기회에 얼굴 좀 보자는 연락이었다.
덕분에 실로 오랜만에 박범신 선배를 다시 볼 수 있었고, 박범신 선배와 후배 작가인 내가 몽산포에서 오랜만에 해후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고, 내 초등학생 아이들도 난생 처음 TV에 출연(?) 할 수 있었다. 박 선배는 일행과 함께 우리 집(지금의 아파트가 아닌 23평 연립)에 와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1984년에 뵈었던 내 선친 모습과 그 시절의 우리 옴팡집을 추억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10여 년 세월이 금세 흘렀다. 1998년 그때로부터 정확히 11년이 지난 올해 9월 17일 나는 이번에도 우리 고장에서 박범신 선배를 다시 만났다. 우리 고장에서 박범신 선배를 만나기는 이번이 네 번째다.
실로 오랜만에, 1998년 이후로는 처음으로 박범신 선배를 우리 고장에서 다시 만나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태안군청 주민생활과에 감사했다. 박범신 선배와 처음 만난 때로부터 어느새 27년의 세월의 바람같이 흘렀음을 헤아렸다. 피차 혈기왕성했던 30대 중반 시절로부터 30년 가까이 흘러온 오늘 우리는 60대 초반과 중반의 세월을 얼굴에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