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MB '그랜드 바겐'에 냉랭... 대북정책 이견 현실화

미 국무부 "모르겠다"... <뉴욕타임스>도 "무리한 주장"

등록 2009.09.23 16:04수정 2009.09.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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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은 21일(미국 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CFR).코리아소사이어티(KS).아시아소사이어티(AS) 공동주최 오찬 연설에서 북핵 문제 관련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을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은 21일(미국 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CFR).코리아소사이어티(KS).아시아소사이어티(AS) 공동주최 오찬 연설에서 북핵 문제 관련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을 밝혔다.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은 21일(미국 현지시간) 미국외교협회(CFR).코리아소사이어티(KS).아시아소사이어티(AS) 공동주최 오찬 연설에서 북핵 문제 관련 '그랜드 바겐(Grand Bargain)' 구상을 밝혔다. ⓒ 청와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 구상에 대해,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북핵 문제에 대한 이 대통령의 근원적 처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북핵 문제에 대해 과거의 '행동 대 행동'에 따른 단계적 접근이 아닌, '북핵 폐기-대가'에 대한 '원 샷 딜'(one shot deal, 한 방 협상)을 강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미국에서 나오는 반응은 차가운 편이다. <뉴욕타임스>는 22일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를 묶어서 다룬 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그랜드 바겐)이 미국을 놀라게 만들었다(Mr. Lee's proposal caught the United States by surprise)"고 전했다. 이어 기사는 미국 고위 당국자(A senior administration official)를 인용해 "미국은 한국 지도자를 존경하고 한국 정부와 잘 협력하고 있지만, 북핵 문제를 한번(single step)에 해결하려는 시도는 무리하다(far-fetched)"고 말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도 엇박자 분위기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이 대통령의 연설이 있던 날 뉴욕에서 한 한미 외교장관 회담 결과 브리핑에서,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에 대해 "솔직히 모르겠다(Actually, to be perfectly honest, I was not aware of that).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그런 얘기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에서 대북정책을 관장하는 캠벨의 입에서, 한국 정부가 '근원적 처방'이라고까지 의미를 강조한 '그랜드 바겐'에 대해 "모르겠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언 켈리 미 국무부 대변인도 다음날인 22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과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대한 적절한 해법에 대해 공동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이는 이 대통령의 정책이고 그의 연설(This is his policy. These were his remarks)이기 때문에 내가 코멘트할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민간연구자인 리언 시걸 박사는 보다 직접적이다. 그는 2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북한이 핵 폐기를 먼저 한다는 전제 하에 안전 보장과 국제 지원을 보장한다는 '일괄 타결안'은 실현 가능성이 없으며, 잘못된 출발점"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2월에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정책 특별대표와 함께 방북하는 등 여러 차례 방북 경험이 있는 그는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고, 6자회담 당사국 중 어느 국가도 현재 이 안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서 북핵 협상에 종지부를 찍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의 반응이 이렇게 나오면서, '그랜드 바겐'에 대해 한미간에 사전조율이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캠벨 차관보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인 것에 대해 보고체계상의 문제라고 해명하고 있다.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이 지난 17일 주한 미 대사관 대사대리에게 '그랜드 바겐'의 개념과 취지에 대해 설명했는대, 당시 캠벨 차관보가 일본 출장 중이어서 보고를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다는 것이 외교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21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에서 '그랜드 바겐'이 거론되지 않은 배경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연설에 앞서 외교장관 회담이 있었고, 북한에 대한 한미 공조가 긴밀하게 이뤄지면서 서로 양해가 된 사항이기 때문에 따로 얘기가 안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안의 중대성으로 볼 때 '보고체계상의 실수'라는 해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또 이 대통령의 대북 중대구상에 대해 직전 외교장관 회담에서 거론되지 않았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명박 정부, 미국에 북미대화 속도조절 견제구"

 

'북미회담' 정국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한미간의 이견이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변화는 전술적 변화일 뿐"이라며 제재를 강조하는 한국과 "당분간은 허니문"(파네타 CIA 국장)이라는 미국의 입장 차이가 표면 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이 대통령이 미국 현지에서 북한이 수용하기 어려운 '그랜드 바겐' 구상을 밝힌 것은, 북미대화를 서두르고 있는 미국에 속도조절을 요구하는 견제구의 의미가 있다"면서 "정부는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이 조기에 이뤄지고 한국이 허겁지겁 이를 따라가는 모양새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캠벨 차관보는 21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에게 2005년 9.19 공동성명과 2007년 2.13 합의 이행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며 "정책차원에서 보면 캠벨의 '포괄적 패키지'는 핵폐기와 그에 따른 대가 제공을 '단계병행론'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비해, 이 대통령의 그랜드 바겐은 '선핵폐기'론의 시각"이라고 말했다.

2009.09.23 16:04ⓒ 2009 OhmyNews
#그랜드 바겐 #커트캠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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