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72학번인데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현대사를 거의 배우지 못했다. 국사교과서를 보면 고조선 이후 해방 전까지는 200페이지, 해방 이후가 불과 5페이지다.
2009년 한국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 안의 일이 95%를 규정하는데 그것을 교육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도, 박정희 대통령도 그 현대사를 국민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국사에서 현대사가 분리된 것이 국민의 정부 당시의 일인데 아직도 필수과목이 아니다."
문씨는 또 전적으로 사견임을 전제로 인터넷 정당 활성화를 통한 정당개혁 등 현실정치에 대한 해법도 제시했다.
"민주당은 지금 상태에서는 물갈이를 할 수 없다. 지금 이대로만 가면 수도권에서 상당히 우세할 것이고 아마도 30~40석은 더 얻을 것이 뻔한데, 어차피 대통령하겠다는 후보는 한두 명이고 국회의원 하겠다는 사람은 수백 명 아니냐? 이런 구조라면 많이 당선될 게 뻔한데 굳이 바꾸려고 하겠나? 그렇기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노사모란 정치조직체가 만든 개혁당과 민주당이 중간에서 만난 것이 열린우리당이었다. 이것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가 당원들의 성향이 너무 달랐다는 점이다. 그것을 하나로 묶어서 화학적 결합을 추구했기 때문에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기존 정당을 50으로 하고 인터넷 정당을 50으로 해서 방 2개짜리 정당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네티즌의 경우는 어떤 한 사람을 놓고 모이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 지구당은 4~8개 지구당을 합쳐서 만들고, 당원들은 이들 지구당에서 모두 투표권을 행사하고 이런 식으로 생활정치 구조를 만들어 양쪽이 함께 가는 구조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한다."
이어 문씨는 부친인 문익환 목사가 1989년 평양을 방문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을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선뜻 변호인이 되어주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참여정부에서 왜 정치에 뛰어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문씨는 "처음에 노무현 후보를 돕겠다고 했을 때 절대 직업을 바꾸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시작을 했다. 문 목사는 시비거리가 거의 없었던 삶을 사셨는데, 꼭 한 가지 1987년 대선에서 민주화 세력의 분열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그 때 이미 문 목사는 이 세상에 안 계셨지만 내가 아들로서 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드리고 싶었다. 물론 나와 문 목사는 존재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만 나로선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한 것이 노 후보를 지원하게 된 동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활동의 결과로서 노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뒤에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다 사양했다"고 밝혔다.
문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영화를 만든다면 자신은 어떤 배역을 맡을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정말 노 전 대통령은 내가 연기할 수 없을 것"이라며 "악역에는 자신이 생겼기 때문에 족벌신문 (사주)역은 할 수 있을 것"이라 답변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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