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 선생님 모십니다'라는 전단지. 서울의 한 대학 캠퍼스 내에 붙어 있다. 수많은 대학생, 미취업 대졸자들이 과외 시장에 뛰어 든다.
조은별
A(28, 여)는 몇 년 전 대학을 졸업했지만 아직 취업 준비생이다. 그는 요즘 논술 과외를 통해 돈을 벌고 있다. 물론 그는 과외를 원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가 없고 취직이 안되는 상황에서 고학력자가 기댈 수 있는 곳은 사교육 시장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그는 새로 뜨는 취업 공고를 챙기랴, 과외 준비하랴 정신이 없다. 덕분에 오후 3시 30분에 기자를 만난 패스트푸드점에서 그날의 첫 식사를 햄버거로 때웠다. 그는 여타 대학생들이 그러하듯 4학년 2학기부터 취업 준비를 했다. 대학의 마지막 학기, 취업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는 초조함에 힘들었다"고 답했다. 그는 언론사 입사를 희망하고 있지만, 경기침체 때문에 신입을 뽑는 곳이 많지 않아서 취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졸업 후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묻자 A는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30~40만원을 벌고, 지방에 계신 부모님의 지원도 약간 받는다"고 답했다. 그러나 "부모님께선 말없이 지지해 주시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아버지의 퇴직도 임박했고, 동생 역시 올해 대학에 입학해 들어갈 돈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직업의 안정성 때문에 그가 공기업 쪽을 알아봤으면 하는 눈치시지만, 별다른 말씀은 하지 않으신다고. 주변에서 '엄친딸'이 취직 후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린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부모님께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죄송함이 더욱 커진다.
"행정인턴, 직장인도 아니고 취업 준비도 할 수 없어"A는 정부가 제공하는 단기 일자리인 '행정인턴' 등에 참여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다. 왜 이런 제도를 활용하지 않는지 묻자 그는 "애초에 인턴을 한다고 해도 계속 그 직장에서 일할 수 없고, 경력에 도움이 안 된다"라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시간만 많이 투자해야 하고 자기 계발에 도움이 안 된다"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현 정권 분위기라면 아주 잘해야 계약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A는 실제로 오는 12월 '행정인턴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는 친구 얘기를 들려줬다. 처음에는 직장인이 된 기분을 맛보며 즐거워했던 그의 친구는 계약 만료라는 현실 앞에 고민이 많다고. A는 "친구가 직장인도 아니고, 취업 준비를 충실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회의를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A에게 "비정규직이라도 일자리를 구하라는 압력도 있을 것 같다"고 묻자 "그건 무책임한 말"이라는 속내를 드러냈다. 그에게 비정규직은 쉽게 발을 담그고 싶지 않다고 있다.
그는취업 공고를 볼 때 '계약직인가 아닌가?'를 가장 먼저 본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점점 신입 사원이 되기가 어려워지는 현실에서 '계약직'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 다른 직장을 어떻게 구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는 "내 인생이 100년 가까이 갈지도 모르는데, 몇 년 돈을 벌고 말고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정부가 '청년들의 눈높이 낮추기'를 실업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보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A는 "사람들은 취업을 못하는 건데 안하는 걸로 몰아간다"며 "정부가 비정규직 문제를 너무 방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정부가 손을 놓고 있기 때문에 구조적인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그는 "현 정부가 비정규직법 개정을 시도했을 때 분노했다. 노무현 정권 때는 부족하지만 보호 법안이라도 만들었는데, 현 정부는 최소한의 바람막이조차 없애려 하고, 청년 실업을 해소하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정부 정책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는 학생도 아니고 완전한 사회인도 아닌 자신의 위치 때문에 "소속감이 없어서 불안한 건 항상 있다. 계속 사회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어 그는 "그런 박탈감을 느끼기 싫어서라도 원하는 곳에 가겠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는 말을 남기고, 논술 예상문제들을 다시 갈무리해 가방에 넣은 뒤 자리를 떴다.
"방세와 생활비 벌기 위해 안 해본 '알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