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다투지 않는 물처럼

등록 2009.09.21 19:30수정 2009.09.21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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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였던 아가씨를 만나 함께 몇 년 일하다가 행사장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그 아가씨는 이제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안경뒤에 초롱초롱한 눈을 가진 별명이 별이란 사내아이가 나를 보고 인사를 한다.

 

아기때는 내가 자주 안고 업고도 해주었던 아이다. 반가워서 손을 잡고 어깨를 도닥거리며 말했다.

 

"네가 어느새 이렇게 컸니? 어떻게 이렇게 큰 거야?"

"잘 먹고 잘 살아서 그래요!" 하고 유머스러하게 대답하는 품새가 의젓하다.

 

"그래? 계속 잘 먹고 잘 살아!" 하고 나도 농을 쳤다. 농을 쳤지만 은근히 미안했다. 그 아이 엄마는 내가 농담으로 "별이는 내가 양자삼고 싶어!" 하는 말을 진담으로 여겨 항상 그 아이를 내게 자주 인사시킬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창립 10주년의 행사는 잘 진행되었다. 오랜만에 큰 맘먹고 밥값이 만만찮은 좋은 장소를 빌려서 치렀다. 그러나 약간의 후유증이 발생했다. 평소에 오는 회원들과 초대내빈들의 2배수를 넉넉히 잡고 새로 지은 웨딩신관을 빌렸던 것이다.

 

그러나 웬걸? 식비도 후원금도 갖고 오지 말고 부담없이 함께 즐기자는 홍보가 위력을 발휘했는지 실제 예상보다 배로 사람들이 가족과 사촌에 팔촌도 데리고 와서 즐겁게 담소하면서 잔치를 즐겼다. 담당 관계자는 아마 한동안 허리띠를 졸라매야 뒷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항상 모든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운좋게 예상대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이 운도 치밀한 계획과 여러가지 방편으로 미리 사전실행한 예행에 따라서 나오고, 탈은 우연히 오는 것 같지만 준비가 미흡하거나 지나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나는 자주 배탈이 난다. 잘 먹지 않거나 아니면 내 체질에 맞지 않는 것을 먹거나 하는 경우이다. 그리고 자주 아프다. 잘 자지 않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붓을 오래잡고 작품만들기에 몰두한 경우이다. 탈이 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곧잘 그렇게 탈을 자초한다.

 

그러나 그러한 탈 속에 빠진뒤 작품을 마치고 다시 맛보는 세상은 마치 부활의 느낌처럼 새로운 세상같고, 10분의 휴식이 마치 10일의 달콤한 나날같이 황홀하게 안락하다.

 

노자의 물 물을 대자로 비색으로 바탕에 먼저 쓴 뒤에 용비어천가체와 풀뿌리 민체협서로 창작표현
노자의 물물을 대자로 비색으로 바탕에 먼저 쓴 뒤에 용비어천가체와 풀뿌리 민체협서로 창작표현이영미
▲ 노자의 물 물을 대자로 비색으로 바탕에 먼저 쓴 뒤에 용비어천가체와 풀뿌리 민체협서로 창작표현 ⓒ 이영미

 

 

그러한 나 자신을 도닥거리기 위해 오랜만에 먼지가 책갈피에 끼인 단행본 노자를 꺼냈다. 그리고 마음에 새기고자 작품을 만들었다. 큰 그릇에도 담겨지고 작은 그릇에도 담겨지며, 낮은 곳으로 순리대로 흘러가는 물의 흐름을 담고자 하는 바람이 항상 있기 때문이다.

2009.09.21 19:30ⓒ 2009 OhmyNews
#한글서예 #노자의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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