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에서 노는 아기. 좋은 이웃이 있으면 아기도 즐겁게 놀고 썩 달갑잖은 이웃이 옆에 앉으면 모두 고달픕니다. 서울 마실을 마치고 인천으로 돌아오며 마지막역이 가까울 무렵에는 빈자리가 아주 많아서 아기도 숨통을 트고 둘레 사람들도 좀더 느긋하게 아기하고 놀아 주시곤 합니다.
최종규
제가 앉은 자리라도 내어 드리고 싶지만, 아기하고 이렇게 움직일 때에는 저도 되도록 자리에 앉아 있으려고 합니다. 아기한테 젖을 물릴 때에는 '아기 엄마는 한 자리만 차지하고 앉으면 젖을 물리기 몹시 힘듭'니다. 두 자리를 차지하면서 아기를 가슴에 안은 채로 반쯤 양반다리를 하며 아기를 받치고 있어야 하거든요. 이런 매무새로 십 분 남짓 있어야 하니 아기한테 젖을 물리는 엄마는 누구나 다리가 저리기 마련이고, 이때 옆에서 아기 아빠가 '다리 저린 애 엄마'를 거들거나 아빠 허벅지에 아기 머리를 올려놓으면서 다리풀기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아주머님께서 다리쉼을 하고프신 마음은 알지만, 어른은 조금 서서 가더라도 갓난아기를 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요, 갓난아기를 돌보는 엄마한테 좀더 마음을 쏟을밖에 없는 노릇입니다. 그렇지만, 나이든 분들 가운데에는 "거, 애는 엄마가 무릎에 앉히고 있으면 되지, 왜 두 자리나 차지하고 있어?" 하면서 불뚝 성을 내는 분이 많습니다. 이런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아 우리 세 식구는 '노약자영유아보호자동반자석'이라는 이름이 길게 붙은 자리에 앉지 않으나, 사람들은 앉는 자리에 '영유아'뿐 아니라 '보호자가 동반해서 앉아' 있으며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줄을 까맣게 잊습니다. 당신 스스로 갓난아기를 돌보지 않으니까 모르고, 아주머니와 할머니 들은 지난달 당신이 갓난아기를 돌보며 얼마나 고되고 벅차 했는지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 (장애아이) 누리가 시켜 준 특별수업의 가장 큰 수혜자는 가족들일 것이다. 나나 남편 모두 누리를 키우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평범한 아이인 나래를 대하는 것도 한결 느긋해졌다.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가진 아이의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처음엔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웠지만, 그냥 부모 노릇 자체로만 놓고 본다면 어느 한쪽이 더 어렵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누리를 키워 보지 않았다면 평범하게 태어난 나래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낄 일도 별로 없었을 거고, 누리보다 훨씬 복잡한 욕망과 감정이 있고, 그래서 더 괴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다 .. (6권 8∼9쪽) 자연건강회 강의는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일곱 시를 넘길 때까지 이어집니다. 아기는 그럭저럭 견디면서 엄마젖 물고 두 번 잠들어 줍니다. 낮에는 한 번 똥을 푸지게 누기도 합니다. 강의를 듣는 틈틈이 오줌기저귀와 바지를 빨아서 걸상에 걸치고 말립니다. 종이기저귀를 쓴다면 이렇게 번거롭지 않겠지만, 조금 번거롭더라도 종이기저귀를 쓰고픈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하기는. 하루일을 마치고 축 늘어진 몸으로 다시금 지옥철에 시달리며 인천으로 돌아와서 하루 내 밀린 빨래를 하고 있으면 '오늘 저녁 새로 쌀과 곡식 씻어서 불려 놓는 일'이 까마득하다고 느끼는 가운데, 마룻바닥과 방바닥은 또 언제 닦고, 내 글쓰기는 어떻게 하느냐는 생각이 듭니다. 돈을 벌려고 하는 일은 아니었지만, 뜻있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 하여도 이렇게 몸이 지쳐 버리면 내 마음 또한 지쳐서 뒤틀려 버리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오늘 아침 전철길에서도 새삼 느끼는데, 비오는 날 전철길은 맑은 날 전철길과 견주어 몇 곱으로 고달픕니다. 우산을 든 사람들이 오징어떡처럼 밀리고 깔릴 때에는 옆사람 우산이 내 옷이나 몸에 착 붙으며 '비를 안 맞았어도 몸은 빗물에 젖어'들고 맙니다. 그렇다고 이리 밀리고 저리 치이는 사람이 바닥에 우산을 내려놓을 수 없으며, 짐칸에 올려놓을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오늘은 다른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당신 자리만 넓히면 그만이라는 아저씨가 한 사람 옆에 서는 바람에 훨씬 고달픕니다. 그 옆으로 서며 제 가방을 미는 아가씨는 당신 자리가 퍽 널찍하지만 당신 자리를 조금 줄이며 옆에 찡긴 사람한테 마음을 써 주지 못합니다. 제 오른쪽에 선 아가씨 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두들 서로서로 너무 힘들고 고달픈 나머지 당신 몸 하나만 돌볼 뿐이요, 당신들이 고달프고 짜증나 하듯 옆사람 누구나 고달프고 짜증나게 느끼는가는 깨닫지 못합니다.
.. 지금 한창 기대를 안고 열심히 치료나 학습을 하고 있는 후배 엄마들이 듣고서 섭섭하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소통 능력이나 사회성은 청년이 되어서도 제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꼭 세상 잣대에 맞게 고쳐야 하나, 그냥 그대로 받아 주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의 문제보다는 그걸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나는 내 아이를 가르쳤지, 치료하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아이를 아픈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아이의 개성으로 보자. 아이의 부족한 면만을 보지 말고 장점을 보자.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사회에 적응시킬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지 말고, 어떻게 하면 아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아이를 보자 .. (6권 27, 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