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걱정인형. 'Worry doll'이라 하는 이 인형은 과테말라 고산지대 인디언들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동화에서 유래됐다. 한 아이가 너무 걱정이 많아 잠을 못 이루자 그 모습을 딱하게 본 그 아이의 할머니가 구석에서 작은 인형을 꺼내 주며 이야기하길 "이 인형에게 너의 걱정을 이야기 하고 베개 맡에 두고 자면 자는 동안 대신 걱정을 해줄 테니 너는 걱정을 이 아이들에게 맡기고 편히 자렴" 해서 그 아이는 편히 잤다, 하는 이야기다.
사실 나는 이 인형을 인사동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들과 눈빛을 맞추고 대화를 나누면서 팔고 싶었다. 나는 돗자리를 깔고 앉아서 내가 만든 걱정인형으로 많은 사람들의 걱정을 들어주며 여러 사람의 걱정을 공유하고 위로해야 겠다, 이 걱정인형을 판 돈으로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해야 겠다,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와, 이거 너무 신난다, 다짐하곤 수차례의 실패 끝에 걱정인형을 완성하기에 이른다.
당시 나는 인사동으로 나갈 준비가 되었으나 때는 2월이었고 2009년 2월은 여느 2월과 마찬가지로 몹시 추웠기 때문에 바로 포기했다. 대화도 좋고, 걱정, 위로 다 좋지만 인간적으로 2월은 너무 추웠다. 전국의 스키장이 풀가동인 시즌 아닌가. 난 본능적으로 이건 아니다 싶었고 하는 수 없이 따뜻한 봄날이 올 때까지만 온라인으로 걱정인형을 팔자는 것이 여기까지 오게 됐다.
물론 처음엔 걱정인형을 알리는 것에 주력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강매하다시피 하여 점점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결국 어느 정도의 자금을 모았다. 나는 그 자금을 가지고 캄보디아의 어린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하기 위해 짐을 싸기 시작했다. 그렇게 조금씩 번 돈으로 축구공을 준비하고 배구공을 준비하고 헌 옷가지를 준비했고, 걱정인형을 구입하셨던 치과의사 한 분이 칫솔100개를 무료로 제공해주시기까지 하여 이민 가방 한 가득을 아이들 선물로 채울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선물해주고, 그쪽 NGO단체와 함께 축구 골대도 세우고 돌아오니 나는 이렇게 '엣지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좋은 데 취직해서 행복하게 못 살까봐 걱정하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