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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고향을 떠난 지 15년이 넘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점점 고향이 그리워지고 그때 있었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곤 한다.
며칠 전 아는 사람이 상한 음식을 잘못 먹고 병원에 입원해서 문병을 다녀왔다. 문병을 가서 상한 음식을 먹고 누워있는 환자를 보니 문득 이곳에 이사오기 전 고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88서울 올림픽이 끝난 이듬해 결혼을 하고 첫 애를 낳았을 무렵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산림가꾸기 사업을 다니시곤 했는데 일을 하다 운좋게도 작은 산삼 네 뿌리를 캔 적이 있었다.
함께 일하러 간 사람들이 팔면 돈이 된다는 말을 하셨지만 모두 손주들을 위해서 내놓으셨다. 그런데 산삼을 달여 먹은 아들이 갑자기 귀가 퉁퉁 부어 올랐다. 놀라 바로 옆 약재상에 달려 가니 아이에 비해 너무 큰 산삼을 먹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산삼의 크기는 외형이 아니라 귀두의 주름을 보고 나이를 판단하는 것인데 아들이 먹은 것이 가장 나이가 든 산삼이었다는 것이었다. 하루나 이틀 지나면 저절로 붓기가 가라않을 것이라는 약재상의 말처럼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붓기가 쏙 빠졌다. 그때 먹은 산삼 덕분인지는 몰라도 이제껏 병치레 한 번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몇 달 후 아버지가 갑자기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병원으로 달려가니 아버지가 꼼짝도 못하고 누워 계셨다. 어머니께 이유를 물었더니 토사라고 했다.
아, 그 무서운 토사.
토사란 '토사곽란'을 줄여서 하는 말인데 한의학에서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를 하면서 배가 심하게 아픈 병을 이르는 말한다.
어릴 적 어머니가 동네에서 잡은 돼지 내장으로 만든 곱창을 내게 가져다 주신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익지 않은데다 내장을 잘 씻지 않은 것을 먹다 토사에 걸려 심하게 고생한 적이 있었다.
온몸에 힘이 쪽 빠지고 식은 땀과 함께 설사가 나와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걸리신 토사도 바로 제대로 익지않은 돼지 내장을 먹고 생긴 병이었다.
일을 마치고 책임자가 돼지 한 마리를 내놓았는데 그것을 구워 먹다가 설익은 내장을 드신 것 같다는 것이었다. 꼼짝도 못하는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 내시느라 고생하시는 어머니. 아버지는 이런 상황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으신 듯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주사와 약을 맞은 지 하루가 지났는데도 별 차도가 없자 늦은 밤 아버지가 나를 급하게 찾으셨다.
깜짝 놀라 병원으로 달려가니 링거를 맞고 계신 아버지가 내게 통마늘을 구해오라 하셨다.
"갑자기 마늘은 왜요? 아버지"
"그냥 빨리 구해와. 아무래도 토사가 너무 심한 것 같은데 병원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
하루 사이 몰라보게 수척해진 아버지를 뒤로 하고 병원 문을 나섰다.
'새벽 두 시에 통마늘을 어디에서 구하지.'
아버지가 사시는 시골은 너무 멀어 급한대로 시내를 돌며 구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포장마차 몇군데를 제외하곤 문을 연 가게가 보이지 않았다. 이곳저곳 다니다 어느덧 집근처까지 오게 되었다. 당시 내가 운영하던 가게 옆이 칼국수로 유명한 집이었는데 늘 사람들로 만원을 이루곤 했다.
혹시나 하고 몰래 식당 뒷마당으로 들어가 보았다. 당시 뒷마당은 문 하나를 두고 함께 쓰고 있던 터라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살금살금 식당을 두리번 거리다 식당 뒷쪽 마루 위에 매달린 통마늘을 발견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통마늘 열 개를 뽑아 병원으로 달려갔다.
환한 곳에서 본 마늘은 생각보다 컸고 캔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싱싱해 보였다.
"그 마늘을 모두 까서 나를 줘."
"예? 이 통마늘을 그대로 드시려고요?"
"민간요법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빨리 까줘."
그리곤 부랴부랴 깐 통마늘을 입에 넣고 마구 씹어 드시기 시작했다. 옆에만 있어도 마늘의 아린 맛과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꾸역꾸역 마늘을 씹어 드시기 시작한 후 5분이 채 안 되었을 무렵이었다. 갑자기 아버지가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휴지통에 급하게 입을 대고 토하기 시작했는데 병실이 떠나갈 듯 새벽에 울리던 아버지의 구토소리는 지금 생각해도 끔찍했다. 그런데 잠시 후 입에서 시뻘건 고기 덩어리 같은 것을 토해내셨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가 드셨던 덜 익은 돼지고기 내장이었다. 아버지 말로는 그것이 토사를 일으킨 주범이었는데 위벽에 달라붙어 문제를 일으켰을 것이라고 했다.
놀라운 것은 그렇게 구토를 하고 난 후 하루 만에 퇴원을 했다는 사실이다. 마늘이 위를 자극해 남아있는 음식물을 몸밖으로 배출하게 했던 것으로 생각되었는데 어찌 되었든 새벽 마늘을 구해간 까닭에 아버지는 토사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도 팔순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토사에는 마늘이 최고여."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2009.09.18 10:41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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