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빙자간음죄의 위헌심판 공개변론이 열린 10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에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과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유성호
황 변호사는 1990년대 중반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참여연대) 고문 변호사를 맡아 잠시 시민운동에 함께하기도 했지만 특별히 본인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황 변호사가 청구인측 대리인을 맡은 것도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헌법재판소가 그를 국선변호인으로 선임해서였다.
하지만 황 변호사는 대리인으로 선임된 후 공개변론을 준비하기 위해 여러 논문들을 뒤적이면서 각계의 의견을 취합했다. 그리고 혼인빙자간음죄(이하 혼빙간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애정표현을 언제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에 따라,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국가가 혼전 성관계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입니다. 특히 형벌권의 행사는 최소한에 그쳐야 하는데, 개개인의 애정표현 방식에 관여하는 것은 과잉간섭으로 헌법이 기초하는 과잉금지 원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특히 형법 304조가 규정하고 있는 '음행의 상습 없는 부녀'라는 표현도 문제 삼았다. 평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국가가 여성을 위하는 척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능력이 모자라는 것처럼 국가가 후견인 역할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여성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것이죠. 여성에게만 정조나 순결을 강조하고 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여성이 성관계를 가진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는 시대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성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잘못 행사할 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여자든 남자든 본인이 행사한 권리에 대해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죠.""일본 형법에서는 빠진 조항을 우리는 받아들여"지난 11일 법학계 인사들로 구성된 형법 개정연구회는 혼인빙자간음죄(아래 혼빙간죄)를 삭제한 형법 개정시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혼인 여부는 여성 또한 자유롭게 결정하고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형법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최종개정안에 반영이 될지는 미지수다. 지난 1992년에도 혼빙간죄를 뺀 형법 개정시안이 나왔지만 최종개정안에서는 그대로 살아남은 전례가 있다. 그만큼 법무부는 혼빙간죄가 필요하다는 태도다.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제한되기는 하지만 과도하게 기본권이 침해당하거나 평등원칙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지난 2002년 재판관 7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당시 헌재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남녀 간의 성에 대한 신체적 차이, 성 행위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다른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며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황 변호사는 그래도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시대 상황이 많이 변한 만큼 위헌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2002년 당시 합헌 결정이 났지만 '추후 본격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내용을 결정문에 남겼습니다. 시대 상황의 변화에 따라 판단을 바꿀 수 있다는 여운을 남긴 것이죠. 요즘은 초등학교 임용시험이나 사법고시 합격자 중 여성이 더 많을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에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번에는 위헌 결정이 나오거나 최소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혼인빙자간음죄는 물론 간통죄도 폐지해야"특히 혼인빙자간음죄를 존속시키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도 어긋난다는 것이 황 변호사의 생각이다. 국가가 개인의 자유의사로 성관계를 한 성인을 처벌하는 것은 한국과 쿠바, 루마니아, 터키 등 극히 일부 나라에만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50여 년 전 일본에서 형법 초안에 혼빙간죄가 마련됐습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형법을 만들 때는 채택이 안 됐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형법에 받아들였죠. 미국에서도 대부분의 주에서 혼빙간죄를 처벌하지 않고 있고 일부 주에만 처벌 규정이 있지만 실제 기소는 되지 않습니다. 독일에서는 1969년 이미 폐지가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