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보아도 한국의 환율은 2009년 6월 기준으로 전년에 비해 21.5퍼센트 상승한 채로 매우 높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7월 이후에는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했던 데 비해서 환율은 거의 하락 없이 횡보하고 있다. 덕분에 환율효과가 유지되어 수출에는 대단히 유리한 환경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 요인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한 대목이다. 실제로 정부는 한국이 주요 국가 가운데 국제 무역에서 가장 환율 효과를 톡톡히 본 국가로 발표한 바가 있다(지식경제부, "환율변동이 국가별 무역에 비치는 영향분석", 2009.9).
다음으로 반드시 확인해야 할 지점은 바로 그 '외국인'이 구체적으로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예상했던 대로 월가 즉, 미국 금융자본이다. 올해 한국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외국자금은 공식적인 미국 국적의 자본이 36퍼센트를 넘고, 사실상 미국 자본이 주류인 조세회피지역 케이만군도 투자자를 합치면 미국계가 절반에 육박한다. 여기에 당사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조세회피 가능성이 높은 룩셈부르크 펀드에도 미국계 자금이 상당히 있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09년 한국 증시는 미국 금융자본이 움직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그런데 금융 불안 진정세로 여유를 찾은 월가의 생존자들이 한국 자본시장으로만 돌아왔을까? 물론 그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외하고 대부분 신흥시장에 외국자금이 다시 유입되었다. 다만 한국에 유입된 자금이 172억 달러 이상으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 다르다. 아시아 신흥시장 가운데에서도 한국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유독 외국자금이 연속해서 유출된바가 있었는데, 그 반대 급부로 올해에는 가장 많은 자금이 유입되었던 것이다.
요약하면 월가의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한 외국자금이 금융위기가 바닥을 지났던 2009년 3월부터 대거 유입되기 시작했고, 특히 아시아 신흥시장 가운데에서도 한국시장으로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그 결과 한국의 주가는 매우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며 올라갔고 그에 비례하여 외국인 지분율도 다시 30퍼센트 위로 올라갔던 것이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미국계 자금유입이 한국 주가 변동의 가장 큰 요인이었던 만큼, 한국의 증시는 여전히 미국의 주가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부 한국의 기업실적 등 실물지표가 별도의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히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큰 변수로 등장한 중국 지수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식시장은 미국 주식시장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고 미국 금융시장과의 강한 '동조화(coupling)'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무역 구조가 금융위기 이후 다시 미국과의 연계성을 완화하는 대신에, 2009년 8월에는 대 중국 의존도가 기존의 20~22퍼센트 수준에서 무려 28퍼센트까지 급증하고 있는 추세와 확연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국의 글로벌 대자본, 증시에서도 주가를 높이다
그런데 한국의 유난히 높은 주가 상승과 관련해서 한 가지 짚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세계 경제침체와 소비위축의 한파를 뚫고 세계 시장 점유율과 글로벌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는 주요 초 대기업들이 한국의 주식시장에 주는 영향력이 어떠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초 대기업들의 규모는 단순히 매출액이나 영업이익률뿐 아니라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시가 총액에서도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한 개 기업의 시가총액 115조 원이 전체 코스피 시가 총액의 13.7퍼센트에 달할 정도이다. 현대자동차 시가 총액 23조 원도 약 3퍼센트의 무거운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주가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전체 주가가 결정된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이 같은 한국의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이번 증시 상승에서 보여준 활약도 눈부신 것이었다. 2009년 종합주가가 3월의 저점 대비 8월 말 평균 50퍼센트라는 엄청난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앞서 언급했다. 그러나 한국 초 대기업들의 주가 상승률은 평균 상승률을 훨씬 뛰어 넘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거의 두 배(46만 원→ 79만 원), 지주회사 엘지도 거의 두 배(3만 8000원→ 7만 8000원)나 뛰었고, 현대 자동차는 아예 두 배를 훌쩍 넘는 기록적인 상승률(4만 7000원→ 11만 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현대자동차 등 일부 기업들은 세계 경기침체 한복판에서 주가가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우는 신고점 갱신 행진을 이어갔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수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른다면 전체 주가의 급등은 필연적인 것이고, 나머지 기업들의 부진을 일거에 상쇄시킬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초 대기업들이 반도체, LCD, 자동차, 휴대폰 등의 분야에서 환율 효과를 등에 업고 세계시장 점유율을 단시간에 확대시키며 보여준 예상외의 실적이 주식시장에 그대로 반영이 된 것이고, 특히 7월 이후에는 이들 기업들의 2분기 실적들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주가 급등을 주도했다(새사연, "삼성과 현대가 잘나가면 우리 국민도 잘 살까?", 2009.9.4).
물론 이들 초 대기업들의 주가 상승에는 역시 외국인의 공헌이 지대했다. 예를 들어 외국인은 삼성전자 3조 5000억 원, 현대차 9800억 원, 지주회사인 LG가 7900억 원 정도를 순 매수했는데 그 사이 기관과 개인은 이들 기업에 대해 모두 순매도를 기록했다.
한국 초대기업들의 주가 폭등은 계열 그룹사들의 시가 총액 비중을 동반 상승시켜 삼성그룹은 전체 시가 총액의 1/5이 넘게 되었으며 현대차 그룹은 6.4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주요 5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자그마치 41.2퍼센트나 차지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한국의 주식시장 폭등은 정부에 의한 저금리 기조와 거시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요 초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방하며 실적을 올려가자 불황 속에서 수익처를 찾던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초 대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3자 합작품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속에서 공매도와 같은 금융자본의 투기적 움직임이 역으로 멀쩡한 기업들의 주가를 폭락시키고 자금난에 빠뜨렸던 상황이 연출되었다면, 대단히 국소적인 기업들에게만 해당되겠지만 다시금 기업실적이라고 하는 실물의 움직임이 주가라고 하는 금융변수를 움직이는 상황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2008년 9월 초 이른바 한국의 9월 위기설이 등장하면서 한국 주식시장이 요동쳤던 1년 전 9월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새사연, "9월 위기설은 지나갔지만, 진짜 위기는 이제 시작", 2008.9.9).
그러나 금융은 아직 살아있다
금융위기 이후 1년 동안의 한국 주식시장의 극적인 변화 양상을 전반적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 아시아에서 금융위기 충격을 가장 크게 받았던 한국은 2009년 3월을 반환점으로 금융위기의 짙은 먹구름이 자산시장에서부터 빠르게 걷히기 시작했고, '여의도 증권가'와 '강남의 부동산 업계'는 언제 금융위기가 있었냐는 듯 금융위기 사실 자체를 잊고 한창 들뜬 분위기로 돌아서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자산시장 상승률은 세계적 추세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더디기만 한 실물경제 회복에 비해 상당히 빠른 것이고 이례적인 것이었다.
▲ 3월부터 한국 주식시장에 되돌아온 외국인은 놀라운 속도로 한국의 주식을 사들이면서 2009년 9월 4일 기준 유가증권 상장 주식을 21조 5000억 원어치를 순 매수했고 시가총액 대비 비중을 다시 31.2퍼센트로 끌어올리게 된다. 올해 한국 자본시장에 무려 50조 원 가까운 자금을 외국인이 쏟아 부었는데, 이 규모는 우리나라가 올해 '수퍼 추경'이라는 용어까지 붙일 정도의 추가경정예산 규모 28조 7000억 원의 1.5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 올해에는 주가가 최저점 대비 약 50퍼센트나 올랐는데 반해서 환율은 -20퍼센트 밖에 떨어지지 않아 일정하게 주가와 연계성이 완화되는 것처럼 나타났다. 즉, 주가는 이미 금융위기 이전 상태로 완전히 회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금융위기 이전 상태인 1000~1100선이 아니라 금융위기가 한창 폭발하던 시점인 2008년 10월 수준에서 더 이상 하락하지 않고 있다.
▲ 올해 한국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외국자금은 공식적인 미국 국적의 자본이 36퍼센트를 넘었고, 사실상 미국 자본이 주류인 조세회피지역 케이만군도 투자자를 합치면 미국계가 절반에 육박한다. 여기에 당자들은 부인하고 있지만 조세회피 가능성이 높은 룩셈부르크 펀드에도 미국계 자금이 상당히 있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009년 한국 증시는 미국 금융자본이 움직였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 한국의 증시는 여전히 미국의 주가와 흐름을 같이하고 있다. 일부 한국의 기업실적 등 실물지표가 별도의 영향을 주기도 하고, 특히 경제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큰 변수로 등장한 중국 지수에 의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한국의 주식시장은 미국 주식시장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있고 미국 금융시장과의 강한 '동조화(coupling)' 범위 안에 있는 것이다. 이는 무역구조가 점점 더 미국과의 연계성을 완화시키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 한국의 초대기업들은 세계 경기침체 한복판에서 주가가 저점 대비 두 배 이상 상승하고 사상 최대의 기록을 세우는 신고점 갱신행진을 이어갔다. 전체 시가총액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이들 기업들이 수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어오르면서 증시 상승을 주도했고 나머지 기업들의 부진을 일거에 상쇄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 삼성그룹은 전체 시가 총액의 1/5이 넘게 되었으며 현대차 그룹은 6.4퍼센트를 차지하는 등 주요 5대 그룹의 시가총액이 자그마치 41.2퍼센트나 차지한다.
▲ 한국의 주식시장 폭등은 정부에 의한 저금리 기조와 거시경제지표 회복이 뒷받침된 가운데, 주요 초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방하며 실적을 올려가자 불황 속에서 수익처를 찾던 월가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초 대기업들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투자하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3자 합작품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국의 주식시장과 자본시장은 향후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은 현재 한국경제와 자본시장을 떠받치고 있는 한국정부와 한국의 초 대기업, 그리고 월가 금융자본의 '지탱능력의 지속성' 여부에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직은 민간 기업과 가계가 바통을 이어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미 '단기 신속대응'으로 성과를 올렸던 한국 정부는 그 만큼 '장기 지속 대응능력'의 여력이 점점 줄고 있는 형편이고, 한국의 초 대기업들도 앞으로 환율 효과를 제거한 후 글로벌 과잉생산 축소와 치킨게임에서 매번 승자가 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자금을 한국에 투입한 월가 자금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여전히 한국행을 지속할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 체이스,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 등 금융시스템 붕괴의 폐허 속에 살아남아 지배력을 더 높인 월가의 자본이 금융팽창의 과거 영예를 재현할지는 더욱 불확실하다.
두 가지 확실한 점이 있다. 하나는 한국의 자본시장이 금융위기 이전이나 이후나 모두 외국자본의 강력한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도 한국증시의 향방은 한국 국민경제가 아니라 월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의미다. 그런데 금융위기의 뇌관들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가 회복세를 타자 숨죽였던 월가의 주요 플레이어들은 아직 시작도 안한 금융규제책에 대해 사실상 무력화에 나서고 있고 월가 출신들로 채워진 오바마 행정부도 여기에 동조하는 기세다.
언제든지 월가 금융불안의 재발로 인한 한국 자본시장도 불안 국면으로 빠질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 역시 자본시장통합법으로 열려있는 공간에서 금융진정세를 타고 뒤늦게 금융팽창을 본격화할 경우 미래는 더욱 안개 속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 하나는, 한국 정부와 한국 초 대기업이 만들어 준 토양위에서 단기 차익을 보고 물밀듯이 밀려드는 외국자금을 뒤따르느라, 고용불안과 소득감소가 전혀 회복되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도 잊은 채 자산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한국의 가계가 안전장치 없는 새로운 금융 불안의 뇌관으로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그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고 금리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되면 위험성의 실체는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 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9.09.13 11:20 | ⓒ 2009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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